▲ 사진/ 박천순 시인
바다가 사랑이다
물결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숨 쉬고 싶을 거야. 모로 누운 몸 사이로
은빛 멸치 떼 물살을 가르고 튀어오른다
참았던 숨을 내쉬어 보자
비늘이 있다면, 온기가 있다면 더 잘 자랄 거야
바다는 토닥토닥 물결뚜껑을 매만진다
햇살 따라 장독 덮개를 갈무리하던 어머니처럼
긴밤 비에 말갛게 닦인 바다가 빛난다
이제 곧 하얀 포말 꽃이 필 테고
깊은 바닥 층층 물고기 떼 분주해질 거다
나는 폭신한 해변을 걸으며 마음껏 상상한다
오늘의 물결 아래 어제의 물결, 작년의 물결, 그 이전의 물결, 맨 밑의 물결
시간이 건너갈 때마다 무거워진 어깨를 무너뜨리고 누웠을 거다
숨소리가 멎고
숨소리가 바닥이 되고
숨소리가 먹이가 되는
방금 잡은 멸치 하나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본다
너무 꼿꼿해서 아프구나
죽음과 생명이 끊임없이 몸을 바꾸고
푸르게 푸르게 익어가는 바다
이 많은 숨소리의 환생이 너무 눈부셔서 아프구나
정다운 이별
주머니를 뒤집어
접혀있던 길을 꺼낸다
숨처럼 둥근 동전이 굴러 떨어진다
세제와 표백제를 잘 풀어
길을 빨다 보면
발끝을 아프게 하던 돌부리
올이 풀리는 소리
배수구가 서서히 젖는다
안개처럼 거품이 피어오르고
길이 점점 납작해진다
길을 빠는 일은
등을 돌린 사람과 정답게 헤어지는 것
어디쯤에서 어긋난 그의 손이
말라붙은 허물을 긁어댄다
단추와 지퍼 사이
부딪히고 비틀리고 한 몸으로 뒤엉켜
얼굴을 알 수 없는 우리
탈색된 길 위에
그가 등만 남긴 채 뚜벅뚜벅
사라져가고 있다
#약력: 2011년 『열린시학』 등단
시집 《달의 해변을 펼치다 》
열린시학상 수상
시산문학상 수상
이메일/ sky-s5@hanmail.net
. [오현주 기자=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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