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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士들의 시선>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향례 칼럼   기사입력  2021/03/20 [22:20]

 

▲     © 전남방송

 

어떤 사람이 내게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에너지가 통째로 내게 오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그 인연을 만나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 만나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오늘 하루가 참 재미있었다는 식으로 하루를 마무리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어찌 일일이 그것을 생각하고 복잡하게 살 필요가 있냐고, 그냥 편하게 즐기다 가면 되는 인생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동물적인 육신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고, 진정 나 자신인 영혼의 차원에서의 삶을 일회성이 아닌 영원의 의미로 볼 수 있다면 나의 사고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자신이 육신이라고 단정을 지으면서 살기 때문에 이성을 만날 때에도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꼬드겨서 내 사람으로 만들어 나의 안위와 즐거움을 위해 살 것인가를 은연중에 계산하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러다보니 처음 만났는데도 ‘어떻게 손을 한번 잡아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고 갈 수 있을까?’ 갖가지 상상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손을 한번 잡으면 안아보고 싶고 안으면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간의 동물적인 속성이 아니던가. 돌이켜 보건데 그런 뒤끝은 우리에게 심히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어떤 메시지가 들어 있는지 한번쯤 생각도 해보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내 앞에 오는 사람과 환경은 내게 필요에 의해서 온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상대를 위해 만나게 되면 상대의 숨결, 생각, 말, 행동 하나하나까지 집중하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알게 모르게 주고받는다. 다시 말하면 말을 통해 천기의 에너지로 소통하면서 영혼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길을 따라 걸을 때도 상대의 걸음에 맞추고 눈을 마주하면서 상대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러나 나의 욕심과 계산이 들어간 순간,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면서 몸이 경직되고 상대의 말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앞이 흐려지고 상대를 알 수가 없게 되면서 일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우주는 크게 비물질에너지와 물질에너지 둘로 이루어져 있다. 영혼과 지식은 비물질에너지이고, 천지만물은 물질에너지이다. 이것을 알게 되면 우리의 생각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의 생각도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나 자신이라고 하는 비물질에너지인 영혼은 육신이라는 물질에너지의 옷을 입고 있다. 이 육신이라는 방편이 있기에 말을 통해 지식을 배양하고 영혼을 성장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지식이 상식화되어 70%의 질량이 꽉 찬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저마다의 상식으로 고착되어 부딪치면서 소통이 되지 않아 혼자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혼자 산다고 외롭거나 답답하지 않고 마냥 좋기만 하냐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고 갈구한다. 지식의 기초가 갖추어졌으면 그 안에 밀도가 채워져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살이처럼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태의연한 지난날의 역사를 들먹이면서 지식을 우려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면 그 밀도를 어떻게 채워 우리의 앞길을 빛나게 밝혀갈 것인지를 우리는 찾고 해결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영혼의 밀도가 차야 내면의 에너지가 빛으로 발산이 된다. 그것이 곧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지혜의 말이다. 그 지혜로 사람을 이끄는 것만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를 정리해 놓은 기초교육을 받은 것이다. 이제는 우리 인생을 바르게 사는 법, 내 앞에 온 사람과 환경을 바르게 쓸 줄 아는 것, 즉 현재를 빛나게 사는 인성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운용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은 질량 낮은 삶이다. 이제 우리의 답답함을 풀어줄 미래의 문을 여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성교육이 될 자연의 근본원리이자 진리인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내 앞에 오는 사람을 바르게 대하고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면서 자연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을 배출해 내는 인성교육 말이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가.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제는 분명해졌다. 그러면 그것을 알고 실행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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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20 [22:20]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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