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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종호 시인 '인디안 기우제'
오현주 칼럼 <시, 삶을 치유하다>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1/03/02 [16:20]
▲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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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안 기우제

 

                   염종호

 

 

드디어, 온통 술이다

먼 산 위로 막걸리 쏟는데 방은 말간 소주다

대접 두어 개 펴고 흔쾌히 받아내는 일

오지 사금 캐는 아이처럼

무릎 사이 턱을 박고 단단하게 바닥을 응시한다

대접에 술이 담기는 동안

먼저 취한 개가 흰 벽에 붙어 검은 줄무늬를 만든다

바닥은 컴컴한 나를 끌어다 덮는다

불면이 이불을 밀치듯 벽지가 벽을 밀어낸다

모두 짖는다

나는 술을 사랑한다

술의 신을 경배한다

까끌까끌한 입술을 핥으면 

세상 떠나보내는 사소한 일이 덜컥 가깝기에

누군가를 미치게 사랑하다 잊힌 봄날처럼

목줄기와 가슴을 태우고 헐벗은 몸 몸땅 태워줄

독주가 필요하다

새벽이면 신을 불렀다

선인장꽃만 매번 피다 사그라지는

손바닥만 한 사막의 밤이 사라질 때까지

그리하여 흔적만 남은 강에

내 이름 마른 별빛으로 잠길 때까지

펑펑,

독을 쏟아주십사

 

 

 

염종호 시인의 '인디언 기우제'는 자아가 파 놓은 구덩이가 상당히 깊다. 사막과도 같은 현실이란 방과 먼 산의 대비가 선명하지만, 독주로 일갈하는 의지가 투사되었다. 산화할 것만 같은 메마른 존재로서 절실하게 기도해본 적 있다면 왜 독을 쏟아주십사, 염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으리. 오장육부를 통과하는 알싸한 취기는 단비일지도 모른다. 

 

그가 신이라 불러낸 취중몽은 회상과 죽음을 실사로 찍어낸 현실이다. 어느 정도 적정 연령대에 다다르면 타자의 세계를 모사하는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화자는 호전적 언어를 무릎 꿇리고 인디언처럼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다.

 

위 시는 시제부터 절묘하다. 자칫 잿빛 연기만 풀풀 날릴 수도 있을 진술을 반전의 묘미로 뒤바꾸면서 긍정을 자아내었다. 알다시피 인디언 기우제는 성공률 100%이다. 비가 올 때까지 멈추지 않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다. 시인의 의도를 들어본 적 없으나, 시인다운 시인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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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02 [16:20]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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