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곁에 없는 말
박지웅
당신의 귓속에 물옥잠 꽃잎을 흘려 넣은 부장(副葬)이 어느 잠결에 본 편지 같아
나는 네 개의 손가락에 불 붙여 흙벽에 걸어두고 물속에 번지는 글자들을 여러 번 이어 읽었다
까맣게 사그라진 손톱을 주머니에 넣고 아침이 오는 내항으로 걸어가 고개 들면
누군가 물속에서 등잔불을 흔들 듯 노을 든 바다, 그 먼먼 끝자리에서 비로소 접히는 편지를 보았다
별자리들이 흐린 몸을 던지는 조류에서 입술이 태어난다고 믿었으나 가끔은 곁에 없는 말이 해변에 밀려오곤 했다
흰 종잇장이 형편없이 모아 쥔 말을 태울 때마다
무수히 태어나는 재의 나비는 모두 날개가 하나뿐이었다
슬픈 것들이 모든 여정 마치고 내 육체를 묘지로 쓰는 밤을 외면하지 않았으니
나는 나의 뒷면에도 써내려 가리라, 숨이 끊어진 채 수군거리는 재의 말들을
그렇게 곁에 없는 말을 다 살다간 너머에서 오는 사람이 있다 한들 나는 모른다
성근 봄빛이 찬물처럼 목덜미에 떨어질 무렵
한 장 쭉 찢어져 백지로 날아가 버리는 한낮들
- 2020 인간과문학 여름호
<박지웅 시인 프로필>
부산 출생
2004년 시와사상 신인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지리산 문학상
천상병 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산문집/ ‘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
박지웅 시인은 2021년 봄,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2020년에 산문집 ‘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와 시집‘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증쇄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봄과 함께 찾아올 그의 신작 시집을 기대한다. 그 전에 박지웅 산문집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시를 읽는 아름다운 손가락들이여, 건강하고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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