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길 위에는 단지 걷는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늘 그렇다.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가 없다.” 저자 차노휘가 말한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와 박혀 떠나가지를 않고 있다. 불혹이라고도 일컫는 마흔이라는 나이는 공자가 바라보기에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이다. 뚝심 있고,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킬 줄 알고, 방황과 혼란을 숱하게 겪던 우리들의 20~30대를 거쳐 지나 온 그런 나이이다. 누군가는 이 ‘마흔’을 안정이라고 읽을 것이지만, 누군가는 분명 안일, 또는 지루라고 읽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마흔’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인가를 움켜쥔 채 흔들리지 않기를 갈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발견한 틈 사이로, 저자는 홀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찮은 일이다. 당장 국내여행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나 혼자 사람들이 북적댈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지, 함께하는 이들 없이 지나쳐가는 풍경 속에서 홀로 무슨 사색에 잠길 것인지조차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혼자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은 혼자가 되는 일이다. 혼자가 되는 일은 뒤늦은 ‘독립’이다. 이렇게 말한 저자는 홀로 떠난 낯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독립을 해 보았고, 이제는 길 위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극적인 변화는 얻을 수 없을지 몰라도 굳은 심지를 얻을 수 있었고, 자존감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자신 전부를 쏟아부을 수 있었던 든든한 아군, 용기를 확보한 저자의 발걸음을 찬찬히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속으로
중간지대, 회색지대에서 옮겨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발을 딛는 쪽으로 내 전부를 쏟아부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게 용기라면 나는 든든한 아군을 확보한 셈이다.
철저하게 낯선 공간에서, 무엇보다 언어가 다른 곳에서, 의지할 사람 없이 오롯이 혼자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 그것은 혼자가 되는 일이었다. 뒤늦은 ‘독립’이었다.
나는 이제 길 위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내 걷기는 장담하건대 숨을 쉬는 한 계속될 것이다. 세상의 길이란 모든 길을 걸을, 준비운동에 불과할 뿐이다. 그 길에 ‘글’과 동행할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내 걸음걸이에 윤기를 더하면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14~15쪽)
“산티아고까지 완주하게 된다면 혼자만의 힘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내가 내 발로 걷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잖아. 맥스와 걸으면 서도 너는 도움을 받았을 거야. 맥스도 마찬가지야. 너와 동행해서 외롭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길 위에서는 만남도 이별도 아무 대가 없이 다가오니까. 또한 아무 대가 없이 베푼 인정과 여러 응원이 있으니까. 이런 힘들이 모여서 완주를 해낼 수 있는 거야.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힘이지. (150쪽)
나는 도돌이표를 좋아한다. 끝났다 싶으면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그것. 그 한없는 순환이 내 삶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위한 것이기에 결국은 시작도 끝도 한 몸이다. 이것이 가면 또 다른 ‘이것’이 올 것이다.
세상의 끝도 간절한 ‘시작’을 위한 도돌이표 같은 것이 아닐까. 피니스테레는 ‘피니스끝’와 ‘테레땅’의 합성어이며 로마시대에 그 이름이 지어졌다. 나는 진정한 땅 끝을 보기 위해서 ‘피니스테레 곶Cape Fisterra’까지 갔다.
땅 끝이라는 상징. 0km를 나타내는 표지석. 순례자들의 소지품이 걸린 철탑. 뭔가를 태운 흔적. 전에는 이곳에서 신고 왔던 신발 등을 태웠다.
‘태운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헌것을 태우고 새것을 얻겠다는, 묵은 죄를 벗고 새로워지겠다는. 불이란 일종의 소독이나 정화를 의미한다. 지금은 환경보호 이유로 금지되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나는 불을 피운 흔적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313쪽)
차례
작가의 말
제1부 길 위에서
1. 길에 들어서기 전, 심호흡을 하며: 왜 너는 이곳에 혼자 있니?
2. 생장피드포르~론세스바예스: 우리는 서로의 보폭을 배려해야 했다
3. 론세스바예스~수비리: 왜 한국인들은 이 길을 많이 걷죠?
4. 수비리~팜플로나: 아직 남은 날들… 오늘만 걷는 게 아니다
5. 팜플로나~푸엔테 라 레이나: 까마귀 없는 밀밭에서 고흐 동생을 떠올린 까닭
6. 푸엔테 라 레이나~에스테야: 산티아고 순례자의 식탁에 볶음밥이 오른 사연
7. 에스테야~토레스 델 리오: 형의 죽음, 이 남자를 800km 순례길에 들게 했다
8. 토레스 델 리오~나바레떼: “실패를 생각해 본 적 없다” 쿨남의 지론
9. 나바레테~아소프라: “나도 머무를까?” 앞서가던 그가 말했다
10. 아소프라~벨로라도: “내 아들이 살아 있소” 자식 죽인 재판관 찾아간 부부
11. 벨로라도~아타푸에르카: 순례길 걷다가 만난 ‘진짜 순례자’
12. 아타푸에르카~부르고스: “혼자 걷는 게 아니야” 길에서 만난 천사들
13. 부르고스~온타나스: 그늘 한 점 없는 흙길, 그곳에서의 7시간
14. 온타나스~프로미스타: 노래판이 열리자 옆에선 춤판… 순례자의 밤
15. 프로미스타~칼사디야 데 라 케샤: “내게 라디오가 있다” 유대인을 살린 그의 거짓말
16. 칼사디야 데 라 케샤~칼사다 데 코토: 혼자 남는 것,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제2부 홀로 걷는다는 것
17. 칼사다 데 코토~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혼자 걸으면 내 속도에 맞출 수 있잖아
18.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레온: 창밖으로 보이는 그들 “미친놈들!” 소리가 나와 버렸다
19. 레온~산 마르틴 델 카미노: 순례길에 오른 나와 그들, 단 하나의 공통점
20. 산 마르틴 데 카미노~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그에게 보낸 문자 “언제쯤 ‘나’를 만날 수 있을까?”
21.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폰세바돈: 발을 뒤덮은 밴드, 왜 나는 멈출 수 없었나
22. 폰세바돈~폰페라다: 천국이 어디냐고요?
23. 폰페라다~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혼자가 되자, 드디어 나만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24.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루이텔란: 할까, 말까… 생각이 많을 때 나를 움직이는 법
25. 루이텔란~폰프리아: 파울로 코엘료를 ‘세계적 작가’로 만든 그 길
26. 폰프리아~사모스: 순례길에서 〈송아지〉 노래를 부른 사연
27. 사모스~페나: 사리아에서부터 순례자들이 많은 이유
28. 페나~리곤데: 산티아고 순례길, 단거리·장거리 순례자 구별법
29. 리곤데~멜리데: 잘 가다가 왜, 갑자기 허전함이 몰려올까
30. 멜리데~살세다: 처음 본 남자가 물었다 “당신은 기적을 믿나요?”
31. 살세다~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착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글을 마무리하면서
발간에 부쳐
참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