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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시 ]이명윤 시인 신작시 '당신이 다시 벚나무로 태어나'외 1편
봄 날의 사진을 찍었으면 해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4/03/23 [16:09]

  © 전남방송


      ▲ 사진/ 이명윤 시인

 

 

     당신이 다시 벚나무로 태어나

 

                    이명윤

 

 수천 개의 고운 눈으로 나를 봤으면 해

사람들의 걸음마다 당신이 피어있고

거리를 흐르는 노래 가사에도

당신의 이름이 있었으면 해

바람에 흔들려 툭, 어깨 위로

내려앉은 꽃잎이

당신이 행복해서 그만 무심코 떨어뜨린

한 방울 눈물이었으면 해

더 이상 사람들은

저녁뉴스에 놀라지 않을 테고

아무도 찾지 않던 골목길 창가로

기웃기웃 가지가 안부처럼 뻗어가겠지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큰 밥상을

공중마다 칸칸이 눈부시게 차려 놓고

아아, 배불러 터지겠다

우르르 몸을 비틀 때마다

세상이 큰 환호를 질렀으면 해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고독했을 당신의 등에 마구 기대어

봄날의 사진을 찍었으면 해

다시 벚나무로 태어나 당신은

당신을 하얗게 잊고

우리는 봄비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당신의 엔딩을 가졌으면 해

 

 

     저녁이 온다

 

                이명윤

 

 

네가 저녁에 대해 물었을 때

먼 산 뒤에 숨어 있던 저녁이 온다

저녁은 가만히 돌아앉아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던 것

물컵에 천천히 한숨을 따를 때

비스듬히 저녁이 온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는 저녁에게

손을 흔드니, 저 순한 어둠은

못 본 척하지 않고 나에게로 와

한 편의 시가 된다

저녁을 이야기할 때마다 어둑어둑

깊어지는 저녁의 눈빛

모닥불로 훨훨 거침없이 피는 저녁

자귀나무 이파리로 가만히 흔들리는 저녁

때로는 담장 아래 앉은 그림자로

훌쩍거리는 저녁

빙글빙글 돌아가는 저녁의 식탁에 앉아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사람들

눈 위로 떨어지는 한 줄기 빛,

혹은 오래 묵은 빚처럼 완성될

어느 쓸쓸하고 가난한 저녁을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저녁의 숨소리를 배우며 사는 것

오늘의 저녁은

일만구천칠백열두 번째 저녁,

저녁을 밟고 저녁을 넘어

물밀듯이 밀려오는 저녁

소리 없이 다가오는 사자처럼

검은 눈빛을 펄럭이며 저녁이 온다

저녁을 부르면 최초의 약속처럼

아름답고 서러운 저녁이 온다

 

 

     ▲ 프로필

 

 1968년 경남 통영 출생

 2007년 계간 《시안 》신인상 당선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 』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

 현재 문학 밴드 '문장콘서트' 리더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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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3/23 [16:09]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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