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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시 』 심영일 시인'슈뢰딩거 고양이'외 2편
계간<시와경계> 신인부문 당선작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3/11/10 [10:42]

  © 전남방송


▲사진/ 심영일 시인

 

 

 슈뢰딩거 고양이

 

 

골목 끝으로 길이 걸어간다

허공에 쪽창을 남기고 집은 떠났지만

액자 속 남자는 창을 연다

달을 품은 적 없는 창의 소름이 서로 부둥켜 틀을 적실 때마다 가슴 한 쪽 흘러간다

 

이곳에선 누구나 젖게 된다

말라있다 해도 얼룩의 크기를 감추지 못해 웃게 된다

넌 내가 열고 나온 서랍 속 세상이

궁금했고

쪽창으로 들어온 새의 날갯짓을 난 사랑해야 했다

 

불을 켜면 담장을 밟고 내려오는 창

그림자에 앉아 발등을 핥는다

행인들은 발을 굴러 야성을 간 보지만 두 눈에 잠긴 연민을 읽지 못했다

 

벼랑을 타고 오른 길이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빌린 시간을 발라낸 자들은 먼지로 세운 몸뚱이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네모진 달에 의심이 자라면 커튼을 내린다

쪽창에 실려 떠나는 건 세상을 비우는 일

골목이 사라지면 몸을 접어 어둠이 된다

 

사람 속에도 골목이 있다

두고 온 창문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

잃은 것을 모으는 재주가 있는지 집을 놓친 창문이 멀리 흘러온다

커튼 너머 흔들리는 사내

어디에서 마주치든 우린 낯설다

 

         

 

 세탁기 앞에 무릎을 끌어안고

 

 

겉과 겉이 사랑을 한다

중력 잃은 공간에서 하나가 된다

상상할 수 없는 자세로 뒤엉키는 내 겉과 네 겉

 

탈수시킨 바깥의 그늘에서 우린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서로를 축으로 공전할 뿐 각자의 세상을 범하진 않았다

속일 것도 속을 것도 남아있지 않는 속과 속은 투명하다

 

엉킨 겉을 꺼내며 옆집 남자의 허벅지를 생각한다

두 눈에 잠긴 욕심을 낚아 올려

가장 은밀한 속을 내주고 싶은 날

 

눈이 내린다

흰 깃을 품고 있으면서 구름은 왜 먹구름일까

 

정지 버튼을 누루고 싶은 오후 다섯 시

관음을 앓고 있다

네가 돌아오지 않는 저녁이 계속되길 바란다

 

딸꾹!
겉들의 체크아웃

발자국 한 쌍이 가슴을 밟고 간다

 

한 시절, 도둑맞았다

 

▲ 약력/

         계간<시와경계> 신인문학상

         당선작『슈뢰딩거 고양이 』,

                 『세탁기 앞에 무릎을 끌어안고 』,

                 『지미처럼 살아가기 』

         E-메일: ghol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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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1/10 [10:42]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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