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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시 』최우서 시인 시집 《펜로즈 계단》2편 외 신작시 3편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2/05/26 [17:54]
▲     © 전남방송

▲ 사진/ 최우서 시인

 

 

펜로즈 계단*

 

       최우서

 

느린 나를 입고 어둠이 서 있었다

 

혈관 같은 통로가 넓혀지지 않을 때,

눈꺼풀 위로 펼쳐지는 펜로즈 계단이 있었다

 

이미 몇몇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아니 내려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한 칸 한 칸 가쁜 숨을 삼킬 때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뒤꿈치가 들리며 발가락으로 바람 소리를 듣는 여유

 

그 순간은 내가 아니었다

뜨거웠다 내가 아닌 듯 꿈을 장전한 빛은 경계 없이 무한히 타들어 갔다

 

평면에서 나는 늘 어둠이었다

 

웅크린 채 제자리를 걷고 있는

구석은 자꾸 아팠다

 

오르고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이

평면의 통로라니

접힌 노트가 마음의 골목이라니

메마른 시선에 담은 것이

방향을 잃고 밤새 푹푹 빠져드는 사막이었다니

 

아직 고집의 근육이 부풀지 않았다

 

닿지 않던 곳이 뭉클해진다

 

경계 없는 계단을 돌아 나온 지금은 불가능이 사라진 새벽이다

 

 

*착시현상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모양으로 '불가능한 계단'이라 불리기도 한다

     -시산맥 기획시선 75 <펜로즈 계단> 22p.

 

 

당신을 접목하는 봄

 

       최우서

 

사각 팔레트에 꺾꽂이한 풀이 나란히 눕는다

 

겨우 붙은 서너 개의 잎에 난 

생채기를 지탱하는 밤

 

발근을 꿈꾸며 뽀얀 피로 흉터를 달래고

혈관을 세워 숨을 실어 나른다

 

축축해진 봄의 미열이 오르는 아침

 

햇살 앞에 빳빳하게 마주 선 풀이

약초의 몸으로 거듭난다

 

산고의 고통을 견딘 동이 틀 무렵

 

그녀는 분신 같은 딸을 안았다고 한다

 

더 이상 새순 따윈 돋지 않는

그녀의 낡은 숫자 90, 이제라도 삽목한다면 

<

뽀얀 뿌리와 새 잎이 돋는

봄밭을 환히 치장하고 싶다고 한다

 

지금은 기억만으로도 봄이 자꾸 아프다

 

     - 시산맥 기획시선 75 <펜로즈 계단> 86p.

 

 

라스트 무버*

 

      최우서

 

당신은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수직을 달리는 추격자는 당신의 경쟁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이름을 알지 못해도 검색창은 다정합니다 알고리즘은 절박한 순간에 기분을 상승시켜 줍니다

 

사람들은 수평을 선호하지만

수직의 진보를 꿈꾸더군요 한 발자국씩 수직을 달립니다

상승을 꿈 꿀 때 소나기가 지나갑니다 빠른 추격자입니다

 

100세 신인류 시대가 알고리즘의 대문입니다

불균형의 바퀴인 당신은 낡은 자전거만큼 어설프고 느립니다

바닥을 선호했던 습관으로 달리는 바퀴는 닳은 만큼 무겁습니다

 

고질병의 꼬리를 물고 사라진 지문을 찍습니다

당신은 신인류

다시 태어난 할아버지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게임을 시작합니다

 

상승과 몰락의 세계가 드러나면서 당신이 경험한 평형의 법칙을 게임으로 알려줍니다

 

마음이 게임의 캐릭터 같아야 합니다

 

당신은 경쟁하지 않는 경쟁자이므로

 

 

*라스트 무버 : 최후의 승자

 

 

 

너를 지켜보는 백만 개의 눈

                        -빅브라더

 

                최우서

 

 

너를 들여다본다

표정을 읽고 몸짓을 저장한다

 

꽃잎을 들여다보듯 너를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내 눈빛을 벗어나는 사랑은 없다

너와 나의 관계없는 관계는 

언제부터 표정이 없었을까

 

오늘의 어제는 쳐진 어깨에 맨 가방이 무겁다

내일의 한강변에서 내 눈에 읽힌 

너의 행적들

 

나는 진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수백만 개의 눈으로 송출되는 너의

일상을 나는 편집한다

너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표정과 시선은 어떤지

걸음의 속도와 손의 흔들림은 어떤지

 

사실은 사실처럼 읽는 세상의 

아이러니들

인증되지 않는 것은 검은 손의

영역들

 

종일 나를 지켜보는 너에게 나를 밑긴다

평범한 일상이 소름 돋는다

주위를 엄습하는 불안감이 생길 때

분명 너를 지켜보는 나, 그건 사랑이 아니다

 

 

캐리커처를 읽는 밤

 

       최우서

 

 

내가 나에게 밤을 묻는다

아직도 약속은 유효한지요

 

무뚝뚝한 침묵을 타고 친절한 설국열차가 눈밭을 지나 자정으로 향해 갑니다

 

잘 지내니란 말이 철로에서 웃자라고 있어요

기차역에서 앵무새가 자꾸 태어납니다

 

잘 지내는 앵무새, 똑같은 표정의 앵무새가 되어가는,

나는 앵무새를 언제까지 키워야 할지 난감해요

 

그럼에도 나는 설국역에 도착했고 눈이 부셔 눈을 감았고

 

그러자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꽤나 나를 닮은 캐리커처가 눈 뭉치를 타고 왔어요

새로 탄생한 행성의 이름표를 달고 우주의 궤도를 돌아왔다 하네요

웃어도 되는 밤인가요

 

방 안에는 착한 약속이 쌓여가고

여전히 잘지내고 있는

앵무새는 늘어나 터질 지경입니다만,

 

파랑새의 캐리커처를 가지고 있는 앵무새

창가에서 눈부신 우윳빛깔의 날개를 폅니다

상상과 망상은 다른 것이겠지만,

여긴 방 안입니다

 

울지 말고 웃어봐

파랑새가 웃습니다

표정없는 내게 캐리커처를 선물합니다

앵무새는 말하면서 자신의 캐리커처를 그리는 것일까요

 

나의 캐리커처와 약속을 해요

앵무새와 함께 설국열차를 타고 내일로 가지고

 

 

 

 

최우서 프로필/

   2021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으로 '펜로즈 계단' (시산맥사 2021)

   시산맥 정회원

   wuse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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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5/26 [17:54]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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