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강시연 시인
페이드아웃
강시연
늘어진 그림자 베고 누운 고불매古佛梅
마늘 싹, 어린 냉이도
꽃잎을 손등에 얹고 앉았네
살구빛 스웨터 걸친 산수유
볕뉘 한아름 안고 누굴 기다리나
차가운 톱날, 때늦은 가지치기
꽃이 떨어진다
꽃이 날린다
꽃이 눕는다
꽃비로 날리는 환란의 봄날
노을이 어둠속에 안길 때 밑동에 아로새긴 퍼플색 상처
몽혼의 잠 밖에서 통증을 견뎌 낸
견고한 꿈이 표피 밖으로 밀려 나와
활들짝 놀라 꽃으로 피었다네
머릿속에 꽃불을 추켜 든 주마등
가느다란 실향기에 얽힌 기억
시들어 마른 잠 들어갈 때
엄마와 딸이 나란히 걸어가던 생의 바깥
늦여름, 비 그친 후
강시연
비 그친 장미 정원
시든 꽃, 만개한 꽃, 씨를 담은 열매가 한 울에 공존한다
한철 축제는 끝났는데
다음 생의 비문처럼 피워 올린 꽃송이
희미해져 가는 여름, 몰락의 탁본 속에서도
뚝뚝 꽃물 떨어질 듯 종족 번식을 위한 모색摸索이 붉다
벌 나비 이미 다녀갔다는 바람과 바람의 입담이 무성하고
장미 신전에서 다음 생을 대출받은 씨방들의 수다가 시작된다
삶이 곧 혈투란 걸 알려나, 쟤네들은
아직은 생리하는 것들이잖아, 놔둬 좋을 때야
기껏 가시 몇 점 돋운 기울어진 축제의 저녁
노을강 서녘으로 붉게 흐르고 늦여름의 등짝, 아직은 뜨겁다
제26회 모던포엠 추천작품상 추천사
유창섭 시인. 前) 모던포엠 주간
일반적으로 운위되는 서정시 뿐만아니라 사실 읽기에도 어려운 난해시나 해체시, 혹은 다르게 정의된 많은 시들도 그 시적 목표는 "시적감동"에 이르는 방법을 찾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페이드아웃 외 3편(강시연)의 시를 추천하는 이유는 강시인의 시 속에 앞에서 언급한 시적감동과 그 감동에 이르는 상상력의 결합이 잘 어울리는 시편들이라는 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략)
시인 자신의 내면 풍경과 심상적 반응을 잘 조화시켜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통로를 마련하여 감동으로 이끌어 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추천시를 읽어보면 강시인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시적 감동과 상상력이 잘 접목된 시편으로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하게 한다. 신인으로 나온 강시연 시인이 가진 독특한 발상과 상상력으로 더욱 더 멋진 시 세계를 만들어나가게 되기를 기대한다.
-월간 모던포엠 통권217. 추천사 중 발췌
제26회 모던포엠 추천작품상 추천인: 유창섭, 엄창섭, 장윤우, 전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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