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자신도 모르게 안으로 스며든 것들, 물렁한 문장으로 풀어냅니다.
딱지가 앉은 은유의 입술이 부끄럽지만,
반생을 헐떡이며 오른 산과 반생이 염전으로 흘러들어간 강 사이에
내 숨소리가 거문고 현을 뜯고 있을 때
거칠고 아픈 손끝 진통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 준 詩.
나를 견딜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웠습니다.
시는, 언제라도 내 삶의 무기였고, 참된 용기였습니다.
다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이 쏟아버린 절정의 신음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사과가 있는 정물
선물로 받은 사과
바로 먹지 못해
창가 테이블 위에 둡니다
조금 열린 창틈으로
손 뻗친 햇살이
사과의 볼을 쓰다듬습니다
아마도 폴 세잔의
사과가 있는 정물
그대로 입니다
그녀는 매일같이
시간을 꿰매기 위해
바느질에 몰두합니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언니의 너스레가 떠오릅니다
"가시나, 인제 보니 사과 엉덩이네."
샛별 보고 귀가하던 그땐
토끼잠에 허우적거려도
아침이면 일어서는 햇귀였습니다
며칠 잊고 있던 사과가
조금 헐거워진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졸음의 껍질을 깎아내니
사각사각
입맛이 깨어납니다
햇살 스민 노란 속살에
세상은 달곰해져 돌아갑니다
Autumn Leaves
가을과 겨울 사이를
갸을이라 불러 볼까
옷매무새 여며
꼭꼭 잠가도 되는 그 사이
우두커니 서 있는 저 나무도
가슴에 불을 붙이고
하관을 기다리는데
이젠 비우고 저물녘에 서야 할 때
가을과 겨울 사이를
거울이라 불러 볼까
지금은
그만의 세계로 들어가
내려놓아야 할 때인데
이제 코트 깃 세워
가을 길을 걸어가야지
Autumn Leaves 피아노 반주에
낙엽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바람의 허밍을 즐겨야 해
가을' 갸을' 거울' 겨울
발음의 끝에 긴 고요가 흐르고
고요의 껍질을 벗긴
꽃잠 속으로 파고드려나.
향유고래
나는 기다리는 사람
숨이 벅차 하늘 향해 더운 울음 토하며
나는 기다리는 사람
해저의 어둠이 네 지느러미를
놓을 때까지 주변을 배회하며
나는 기다리는 사람
통증의 바닷속에 잠겨
가슴골 깊은 음역으로 우는 네가
탈출구를 찾을 때까지
나는 기다리는 사람
시커먼 바다, 조난하지 않으려
눈 바늘 파르르 떨며 헤르츠를 찾는
나는 기다리는 사람
긴 잠수를 끝내 네가
수면 위로 하얀 물기둥을 품어 올릴 때까지
나는 기다리는 사람
녹은 내장이 깊은 향수로 남아
네 옆에 오래 머물고 싶은.
▲ 작품해설
보편적으로 그 자신의 시적 차별화는 에코토피아적인 색채감에서 기인(起因)된 연계성이기에 경계 해체의 비법을 숙련된 솜씨로 유감없이 활용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강시연 시인의 고뇌와 집념은 동일한 직물 대상을 다른 시각에서 투시하는 시적 투사(透寫)로 새롭게 시의 지평을 열어놓고 잠시 숨결을 고르는 한편, 자기만의 육성, 느낌을 담아 정렬화(整列化)한 언어 양상을 밀도 있게 조명해 보이는 까닭에 이땅의 충직한 독자에게 일체 갈등의 요소를 충동하지 않는다.
ㅡ작품해설 중에서
엄창섭(카톨릭관동대 명예교수,모던포엠 주간)
▲ 프로필
본명: 강경숙
한맥문학 신인문학상(2016년)
모던포엠 추천작품상(2021년)
시와달빛문학작가회 회원
모던포엠작가회 회원
울산남구문학회 회원
kangsiyeon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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