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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동 舊約聖經 유적지-이집트
<기획특집> 中東 대탐험 ‘아랍의 어제와 오늘!’(29)
 
소정현기자   기사입력  2013/12/04 [00:04]
시사주간지 사건의 내막에서는 <中東 대탐험> 아랍의 어제와 오늘!’의 제하 하에 독자들의 비상한 주목과 열띤 호응 속에 인기리에 절찬 연재된 바 있다.(총60회)

중동의 이미지는 석유와 전쟁의 양대 이미지로만 생생하게 각인되어 온바, 중동의 획일적 사고관을 다채롭게 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시점에 있다.


美國의 이라크 사태 개입에 가일층 상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中東! 한시도 월드뉴스의 헤드라인을 벗어난 적이 없다.

특히 아랍국과 이스라엘간 세기의 반목과 갈등은 미국과 아랍국간 대리전 양상으로 비화된바, 회교와 기독교 대립 구도라는 종교전 양상으로까지 치닫으면서 증오와 테러의 불길을 거세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막대한 석유자원의 보고이면서 고대문명의 중핵을 이루었던 중동의 인식은 이렇듯 전쟁과 테러의 이미지로만 먹칠된 상태이다.

이스라엘 현대사를 심층 조망한 ‘격동의 이스라엘 50년’ 著者이기도 한 소정현 기자는 중립적 시각 하에 중동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제반 전 분야를 세밀 투시할 것이다.독자 제현들의 적극적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편집자 주> 

 
 
‘유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이스라엘 엑서더스’까지 깊은 연원

 ‘고센 지역’ 요셉총리 혈육들 집단이주 정착지
이집트 최초 여왕 핫셉슈트 모세를 왕자 삼아

‘라암세스’는 이스라엘 백성 노예생활 사역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땅에 정탐군 보내



1967년 6월 5일 오전 8시 정각, 이스라엘 군대는 시나이 반도로 전격 침투해 들어갔다. 전투 개시 불과 4일 만에 수에즈운하를 점령함으로써 이스라엘은 기존 영토의 무려 4배에 달하는 거대한 시나이 반도를 독점하였다. 이집트와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다시 반환할 때까지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시나이 반도를 정밀 탐사했다. 구약성경의 구심점이자 원류되는 출애굽(出埃及, Exodus) 사건의 고고학적 흔적을 샅샅이 찾기 위해서였다.

▲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라암세스에서 시내산을 거쳐 가나안땅 접경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는 엑서더스 대서사시.    


 
▽ 舊約 ‘역사적 배경’ 대서사시

▲ 유대인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 신분까지 올랐다.    
이집트는 기독교의 성지라고 일컫는데 일절 부족함이 없다. 특히 구약성경 곳곳에서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하는 고대 애굽(이집트)! 신약시대에는 마가 요한이 서기 44년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와서 구두수선공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콥틱교회의 출발이 되었다.(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콥트라고 부른다.

이는 이집트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애굽토스라는 고대 이집트어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콥틱교회란 이집트 원주민들의 교회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특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는 기독교 최초의 대학과 도서관이 있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본이 탄생한 유서 깊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집트는 구약성경 창세기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인하여 일시 피신한 지역이다.(창 12:10) 당시 이집트는 세계를 철권통치하는 초강국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아브라함이 BC 2090년께 이집트를 찾았을 때는 이미 하(下)이집트 카이로에는 BC 2600년쯤에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가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 노예에서 죄수로, 죄수에서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대기근의 화를 면하기 위해 요셉의 강권으로 야곱의 가족이 이주하여 살았던 중동 고대사의 핵심 터전이다.(창 37장, 39장-46장)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대탄압 속에 모세가 바로(파라오) 공주의 아들 신분으로 40세까지 활동하고(출 2장), 이어 모세의 영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대탈출한 유서 깊은 나라이다.(출 1장-12장) 신약시대에는 예수의 출생 이후 헤롯의 살육을 피해 머무른 지역이었다.(마 2장)


▽ 요셉의 혈육들 집단이주 ‘고센땅’

이집트 사막 가운데 있는 고센 지역은 주위의 사막 지역과 달리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옥하기만 하다. 하(下)이집트의 나일강 델타지역 동편에 비옥한 퇴적토가 형성된 고센(Goshen)! 고센 땅이 위치한 하부 이집트 델타지역은 농경문화 요충지로서 멤피스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약 200km의 삼각주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이곳은 요셉의 부친인 야곱과 가족들이 대기근을 피해 정착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였던 장소로서 지중해의 영향으로 강우량이 비교적 많은데다 나일강의 용이한 관개수로에 힘입어 좋은 땅 라암세스(창 47:27, 11)라 칭함을 받았다.

▲ 이집트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고센에 요셉총리의 혈육들이 집단 이주하다.    


▲ 열 한 명의 형제들과 극적으로 해후하는 요셉 총리    
고대 고센 땅이자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약 250km에 위치한 ‘라암세스’(Rameses)는 애굽의 나일강 하류 델타 동북부에 있던 삼각주의 중앙 부분에 있는 국고성이며 요새 성읍이다.

라암세스가 고대 중동유적지로서 구약성경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야곱 시대 이후 400년 동안 그 후손들이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룬 후 고통스런 노예생활 속에 모세의 인도로 애굽 탈출의 진원지였기 때문이다.(출 12:37)

여기 사적지에서는 당시 흙으로 만든 벽돌들이 다량 발견된다. 주목할 사실은 벽돌 일부에는 짚이 발견되나 또 다른 벽돌에서는 짚이 섞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구약의 출애굽기 기록을 보면 그 실마리가 풀린다. 요셉의 바로(파라오) 시대 이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게 되면서 노예 신세로 전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고성 비돔(Pithom)과 라암세스 건설에 강제 동원된다.(출 1:8-11)

성을 쌓는데 벽돌의 필수적 재료의 하나인 짚을 처음에는 공급받아 만들었으나,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내보낼 것을 강권한 다음부터는 바로가 그들에게 짚을 주지 않자 대신 곡초 그루터기를 찾아 같은 양의 벽돌을 힘겹도록 만든 사실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한다.(출 5:6∼14) 단적으로, 라암세스는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이자 회한으로 점철되어 있는 곳이다. 라암세스에서 극한 고통 속에 울부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가 하늘에 사무쳤으며 야훼는 이에 기꺼이 응답하시고 출애굽의 대사역을 공언하셨다.(출 3:7∼10)


 ▽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시내산’

▲ 모세는 시내산서 이스라엘 백성의 통치 법령인 십계명을 야훼로부터 전달받는다.     

시나이 반도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그리고 이집트를 연결하는 핵심 요충지인 까닭에 너무도 많은 기독교의 핵심 유적지가 산적하여 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시내산이다. 시나이산(Sinai Mt) 일명 시내산은 일찍이 성스러운 산으로서, 야훼의 산으로 점지되었다. 고도 높이 2,285m의 시내산은 카이로에서 415km지점, 시나이 반도 남단 중앙에 우뚝 서 있는 황량하고 검붉은 바위산으로 ‘호렙산’으로도 불리운다. 시나이는 히브리어로 ‘가시덤불’이라는 뜻이며, 호렙은 ‘건조한 곳’이라는 뜻이다.

모세가 이 산에 올라 타지 않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들리는 야훼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민족 해방의 소명을 받았다. 이후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내고, 다시 이 산에 올라와서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출 20장). 구약시대 대선지자 엘리야가 아합의 왕후인 이세벨를 피해 여기서 야훼의 계시를 받았다.(열왕기상 19:8) 이집트의 콥틱교회 수도사들은 이 산을 여호와께서 강림하신 산이라 하여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르며 아랍인들은 ‘게벨무사’(Jebel Musa, 모세의 산)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빼놓을 없는 것은 시내산 동쪽 기슭 1,528m의 중턱에 있는 성 캐더린 수도원(The Monastery of St. Catherine)이다. 이곳은 330 년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모세가 본 불붙은 떨기나무가 있던 자리에 교회를 지었는데, 약 200년 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그 자리에 세운 수도원으로, 그리스 정교회 사제들이 금욕 생활을 하면서 이슬람의 물결 속에서도 기독교를 굳건히 지켜낸 유서 깊은 장소이다.

▲ 이슬람의 물결 속에서도 기독교를 굳건히 지켜낸 ‘성 캐더린 수도원’    


▽ 야훼의 분노 ‘40년 광야생활’

당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최종 도착지인 ‘가나안(Canaan)’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지중해안을 따라가는 블레셋 길이었으나 야훼는 이스라엘을 고난 속에 연단시키기 위해 홍해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출 13:17).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에담(수르) 광야 길을 통해 사흘 동안 진군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Marah)에 도착해서도 물이 써서 마시지 못했다.(출 15:22∼25)

‘마라’는 홍해에서 30㎞ 지점에 소재하는데,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옛날의 마라 지역이 오늘의 아윤 무사(Ayun Musa)라고 간주하고 있다. 이집트말로 ‘아윤은 우물이란 뜻’이고 ‘무사는 모세를 말하니’ 곧 ‘모세의 우물’이다.

이곳 마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으나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한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라 명하시자 물맛이 이내 꿀맛으로 변하였다.(출 15:23) 이곳은 아직도 지하에서 소금기가 있는 물이 나와 쓴맛을 내고 있다.

마라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엘림(Elim)’에 도착했다. 엘림의 유력지역의 하나인 바바(Baba) 계곡에 오아시스가 있다. 여기는 홍해에서 내륙으로 25㎞ 정도 들어간 곳이다. 이 골짜기는 소금으로 뒤덮여 있어 짠 냄새와 함께 달콤한 향기가 이내 퍼지곤 하는데, 다름 아닌 ‘만나’(마나의 히브리어)라는 식물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 출애굽기에서는 엘림에서 내린 만나는 “깟씨 같고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다.”라고 기술하고.(출 16:31) 만나에는 충분한 양의 소금기가함유되어 되어 있을 것이니, 시나이 사막의 살인적 더위에서 체력 고갈을 염두에 둔 야훼의 극진 사랑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읍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기브롯 핫다아와(Kibroth Hattaavah)’는 오늘날 ‘엘 웨이스 엘 에베렉’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산을 떠나 계속 행진할 때 머물렀던 곳이다.(민11:34∼35)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서 광야의 대축복 만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음식의 탐욕으로 원망을 거듭하자 여호와께서 바람을 불어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줌으로 고기를 풍족하게 하였다. 그러나 탐욕으로 고기를 구한 자들이 재앙을 받아 죽어 장사지낸 무덤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 불렀다.

‘놉(Noph)’은 현재 카이로 남쪽 약 37㎞ 지점의 나일강 서편 강둑 위에 있는 성읍으로 이집트 고대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고대 하(下)이집트의 수도였던 이곳은 오늘날 ‘멤피스’로 불리고 있다. 애굽인들은 자연과 생물의 대부분을 신들로 섬겼다.

▲ 멤피스에서 숭배되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황소신 아피스 
특히 놉 지역에서는 이집트 신화에서 창조의 신으로 불린 황소신인 ‘아피스(Apis)를 극진하게 숭배했다. 이는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대한 여파를 미치는데, 야훼의 불같은 거센 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시내산에서의 금송아지 사건이다. 모세가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받으려 시내산으로 올라갔으나 감감무소식이라 단정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내심을 상실한 가운데 모세의 형 아론을 선동하여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출 32장)

평원이란 뜻을 지닌 ‘르비딤(Rephidim)’은 홍해를 건너 시내산 북서쪽 20㎞ 지점인 제벨 세르발(Jebel Serbal)의 북쪽에 펼쳐지는 비옥한 평원 ‘와디 파이란(Wadi Feiran)’으로 알려진다. 르비딤은 매우 큰 오아시스 마을로 도로를 따라 4㎞ 정도에 걸쳐 대추야자 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져 있다. 모세는 갈증에 원망과 탄식을 쏟아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훼의 명령에 순종하여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샘물이 벌컥 솟아나 백성들은 원기를 신속하게 회복하였다.(출 17장)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는 이스라엘 영토의 최남단으로 브엘세바 남쪽 약 80㎞ 지점에 위치한다. 서쪽은 애굽의 강(와디 엘 아리슈)에 가깝고(겔 47:19), 동쪽은 에돔(민 20:13)과 또 아모리인의 고지(신 1:19)와 접경한다.

사막 지대에 구세주라 할 수 있는 오아시스가 존재하는 가데스 바네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출발하여 11일 만에 도착하여 가장 오래 머문 곳이다.(신1:2) 시내산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하여 가장 먼저 ‘다베라(Taberah)’에 진을 쳤고 이어 ‘기브롯 핫다아(Kibroth Hattaavah)’와 ‘하세롯(Hazeroth)’을 거쳐 가데스 바네아까지 계속 북진하였다.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최종 정착지라 할 가나안 본토에 12명의 정탐꾼을 파견했는데, 이 중 갈렙과 여호수아만을 제외하고 모두가 한결같이 가나안땅에 대한 정복의 불가론을 설득력 있게 논지를 폈다. 야훼의 선물인 약속의 땅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인해 광야에서 40년을 방황 생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민수기 13장-14장)

▲ 이집트 최초의 여왕인 핫셉슈트는 모세를 양자로 입적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이집트 대탈출의 총괄 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 입적되었는데(출 2장), 그 공주의 무덤이 비베셋(Pibeseth)에 있다. 나일강 삼각주 지역이자 카이로 동북쪽 48㎞ 지점에 위치한 비베셋의 도시의 원래 이름은 ‘파슈트(Pasht)’이며, 신전터에는 최근 발굴된 ‘핫셉슈트(Hatshepsut) 여왕’의 석상이 있는데 그는 모세를 양자로 삼은 공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 최초의 여왕인 핫셉슈트는 18왕조 5대 파라오 투투모스 1세의 뒤를 이은 이복 오빠 투투모스 2세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다. 남편 투투모스 2세가 자식 없이 요절하자, 서자 투투모스 3세를 섭정하다가 다음해에는 왕위를 아예 박탈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22년 동안이나 선정을 펼쳐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원본 기사 보기:jb-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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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2/04 [00:04]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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