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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 든 밤새 한 마리…날개 터는 깃소리”
(POET VIEW) 林 森 비 내리는 가을밤
 
림삼 / 시인   기사입력  2013/12/01 [20:37]



                   - 비 내리는 가을밤  - 

          
                          林       森 



▲ 가을밤 빗소리 참말 좋지요? 정겹기는 또 얼마나 정겨운데요    


 

             가을밤 빗소리 참말 좋지요?

             정겹기는 또 얼마나 정겨운데요


 
             고즈넉한 뜰안 거기로 가랑잎 나풀 지다가

             살랑이는 바람 슬몃

             밟고 가는 발자욱소리도,



             젖은 죽지 말릴손 처마끝 파드득 파고들다

             오한 든 밤새 한마리

             날개 터는 깃소리도,



             살떨리는 추억 새록이

             가슴팍 생채기로 숨죽여 울면

             저 아래 깊이 숨겨둔

             곱다란 여인 숨소리도, 



             전부 모아 모아서

             견디지 못해 이내 들리어나는

             짜릿한 슬픔 때문 눈물 흘리고 -

             스스로 한껏 도취된 가을

             밤비 되어 내려지는 걸요



             가을밤 빗소리는 행여

             귀 열어 들으려곤 마세요

             심장으로,

             당신의 가장 소중한 심장으로 그윽하게,

             뜨거웁게 기울여 들으세요



             들리어나는 빗소리 담기어 속삭이는 목소리,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기 버거우면

             사람스러운 사람으로 먼저 살아보라는....



             가을밤 빗소리 퍽도 좋지요?

             반갑기는 또 얼마나 반갑다구요









詩作 note

 

‘단순한 자에게는 행운이 기다린다.’
 
세상사는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이 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희노애락이 다 조절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기왕지사 일이 되어진 모양새가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상황에 대처하는 마음이 어떠냐 하는 것은 다음에 있게 될 일의 성패나 결과를 좌우할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원인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마음가짐은 작게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장구한 역사를 바꿀 밑받침의 힘이 될 수 있을 성 싶기도 하다. 가을밤의 빗소리를 어찌 듣느냐 하는 문제는 듣는 사람 마음이다. 듣기에 따라 쓸쓸하거나 을씨년스럽게 들려질 수도 있겠고 다감하거나 사랑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무런 감흥이나 정취를 느끼지 못하고, 겨울을 재촉하면서 내리는, 그래서 다분히 질척거리는 기상 현상의 하나로만 여기게 된다든지, 쓸 데 없이 비가 내리니 길이 막히고 교통 여건에 지장을 초래할테니 사람 귀챦게만 하는, 의미 없는 가을날씨의 하나 정도로 치부한다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가을밤 빗소리에 한 번쯤이라도 심오한 추억의 페이지에 잠겨보았거나 호젓한 그리움으로 어떤 동경의 세계에 잠시라도 심취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때의 마음은 다른 때와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야릇한 감상의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한 번 울컥하는 감정에 치우친 마음의 덫에 사로잡히면 속수무책이 되어 여간해서는 스스로 벗어나거나 자신의 마음을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마음이라고 하는 무형의 존재는 얄궂을 정도로 우리를 다스리려고 든다.

세상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도 잘 조절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므로 서로 양보하기도 하고 이해나 설득을 나누기도 하며 때로는 속마음을 감추고, 혹은 마음을 내비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의 배신이나 모멸감을 접하게 되면 마음을 다쳐서 슬퍼하거나 힘들어할 경우도 있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결과나 상대를 만나게 되면 삶의 기쁨과 환희에 젖어들어가는 상황도 비교적 빈번하게 느끼면서 살아간다.

‘소금장수와 우산장수’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어떠한가에 따라 결과적인 삶의 모습이 확연하게 달라짐을 잘 설명해주는 우화이다. 그런가 하면 ‘냉장고에 든 물 한 컵과 갈증’의 함수관계를 만족과 불만의 마음에 비유하여 상대적으로 제시하는 일화도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흔히 자신만의 특징이나 개성이라고 생각하는 상태가 착각으로 이어져 때로는 자신의 족쇄나 멍에가 되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삶을 그르치거나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낼 때도 많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고집이나 어림짐작, 판에 박은 고정관념, 섣부른 판단과 추측, 편협적인 경험과 사고방식 등은 원활한 사회생활과 성공적인 삶의 행적을 위해서 우리가 피해야 할 사항들이다.

몇 마리인가의 벌과 같은 수의 파리를 병 속에 넣어 바닥을 창쪽으로 해서 병을 뉘어 놓는실험을 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보여진다. 벌은 시종일관 밝은 방향에서 출구를 찾다가 끝내 지쳐서 떨어지거나 굶어 죽을 때까지 병 밑바닥에서 꼼지락대며 악전고투 한다.

이에 비해 파리는 2분도 채 되지 않아 반대쪽 병 주둥이로 나가버린다. 이 실험에서 보면 벌은 빛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하여 항상 그 쪽으로만 나갈 수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 벌의 높은 지능이 오히려 우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벌은 가두어 두면 가장 밝은 쪽에 반드시 출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너무나도 논리적인 행동을 취하고 만다. 벌에 있어서 유리병은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며 어려운 응용문제가 되는 것이다. 벌은 이렇듯 갑자기 나타난 돌파할 수 없는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내 생각의 전환을 멈추어버리고 만다.

지능이 높으면 높을수록 이렇듯 익숙하지 못한 장벽은 보다 비논리적이며 허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파리는 유리의 불가사의한 것 등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빛의 방향 같은 것도 고려에 넣지 않은 채로 무턱대고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단순한 자에게는 행운이 기다린다.’는 격언 그대로 급기야 반대쪽에 부딪쳐 출구를 발견하여 자유스러운 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실험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생각의 틀 보다는 상황여하에 따라 지속, 시행착오, 리스크, 임기응변, 우회, 혼란, 고집, 시도 등의 생각요소가 총 동원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유명한 수필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저자인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고대 그리스 우화를 토대로 세상 사람들을 고슴도치들과 여우들로 나누었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 큰 것을 안다.” 벌린은 세상 사람들을 두 가지 기본그룹, 즉 여우와 고슴도치로 나눈다.

여우는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며 세상의 그 복잡한 면면들을 두루 살핀다. 그들은 어지럽고 산만하고 여러 단계를 오르내리는 탓에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종합적인 개념이나 통일된 비전으로 통합하지를 못한다고 벌린은 말한다.

그에 반해 고슴도치는 복잡한 세계를,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안내하는 단 하나의 체계적인 개념이나 기본원리 또는 개념으로 단순화한다. 고슴도치는 세상이 제 아무리 복잡하건 관계없이 모든 과제와 딜레마들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고슴도치 컨셉으로 축소시킨다. 고슴도치는 고슴도치 컨셉에 다소나마 부합하지 않는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프로이트와 무의식’, ‘다윈과 자연선택’, ‘마르크스와 계급투쟁’,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애덤 스미스와 분업’ 그들은 모두 고슴도치들이었다. 그들은 복잡한 세계를 해석하여 그것을 단순화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고슴도치는 멍청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그들은 심원한 통찰의 본질은 단순함이라는 걸 이해한다. 그들은 복잡한 속을 뚫고서 그 바탕에 깔린 패턴들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고슴도치는 본질적인 것만 보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평범한 조직을 위대한 단체로 도약시킨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모두 고슴도치였다.

그들은 자신의 고슴도치 속성을 활용하여 우리가 고슴도치 컨셉이라고 부르게 된 것을 자기의 당면한 현실에다 밀어붙였다. 상대 조직의 리더들이 여우같은 속성이 있어 고슴도치 컨셉의 분명한 장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지럽고 방만하고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 고슴도치의 생각으로 승리자가 되고 원대한 목표 달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의 동화는 오래 전부터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심어주는 내용으로 동서양을 막론한 필독서다. 근면 성실하게 일 하는 자에게는 안락한 휴식과 댓가가 주어지지만 게으르고 이기적인 자는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권선징악의 만고의 진리를 담고 있다.

그런데 그 동화의 내용이 현대에 와서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각색이 되어지고 해석도 분분하여 보여지는 결과를 반대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 나라별로 문화별로 개미 역할론의 해석 차이가 분분하다.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개미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아뿔사! 여름 내내 오로지 일만 했던 개미들이 모두 신경통이나 관절염에 시달리거나 과로하여 쌓아놓은 식량은 손도 못대고 과로사만 속출하였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만 할 줄 알고 놀 줄 모르는 일본인을 빚댄 우화이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편은 좀 다르다.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개미집을 찾아갔다. 개미는 우리 형제동무들이 왔다고 식량을 모두 거저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며칠 후 식량이 거덜나서 개미도 베짱이도 모두 죽었다고 한다.

이는 나눔과 평등이라는 그럴듯한 미명하에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고 경쟁력이나 생산성이 없는 공산주의를 빗댄 이야기이다.

미국편에 나오는 베짱이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개미집을 찾아갔다. 베짱이는 개미들을 위해 열심히 노래를 불러준다. 그리고 개미들에게 정당한 공연의 댓가를 요구한다. “Ticket please!” 그래서 개미도 살고 베짱이도 사는 상생의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창의성은 오히려 베짱이에게서 나온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새로운 버전이라 하면서 소개된 한국편에서는 베짱이가 여름 내내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기타 연습을 하곤 겨울에 독집으로 노래를 발표했는데 그게 대박이 나서 기획사로부터 많은 돈을 받아 땅도 사고 집도 산다는 해피엔딩 성공신화의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같은 이야기를 놓고 어떤 생각의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실질적인 내용의 본질을 달리 해석하고 스토리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한 처해진 여건이나 환경에 따라서 생각의 틀은 전면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고 발전적으로 진화할 수도 있느니만큼 고정적으로 꽉 짜여진 생각의 틀에서 탈피하여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도전의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지는 과정 없이 단 한 번에 완벽하게 걸음마를 배울 수는 없다. 발명왕 ‘에디슨’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는 데까지 147번의 실패를 경험하였으며 ‘라이트 형제’는 비행에 성공하기까지 무려 805번 재도전을 하였다. 성공은 99%의 실패지식과 1%의 영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와 있는 수 많은 히트상품이나 발명품, 그리고 개선된 결과물들은 모두 수 많은 실패 끝에 탄생된 것이다. 그래서 실패는 ‘더 큰 성공을 위한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참신하고 도전적이어야 할 현대인으로서 살아야 함에도, 노력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며 그저 별다른 생각이나 대과없이, 시키는 거나 하는 데 만족한다면 그 사람은 현대인으로서의 생명력을 이미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설령 지금까지 특별한 생각의 변혁의지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면 이제라도 과거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변화하고자 애쓰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역경에 부딪쳐서 그것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끝까지 진취적인 생각으로 물고 늘어지느냐에 따라 판가름 되기 때문이다.

‘삼성라이온스’는 올해 코리안 시리즈에서 먼저 벼랑 끝에 몰렸었지만 내리 3연승을 하면서 마침내 역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이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문제는 실패의 종류이다.

최선을 다한 실패, 에디슨과 같이 전진을 위한 반복적 실패라면 그것은 좋은 실패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 예컨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 나오는 토끼의 실패처럼 부주의나 불성실에 의한 실패는 결코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올해 가을은 벌써 저만큼 다 지나갔다. 해서 가을밤의 빗소리도 이듬해에나 다시 들을 수 있을게다. 이제부터는 밤비 대신 밤눈이 소복히 내려쌓이는 조용한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세월이 가는 소리, 계절이 주는 소리 속에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 곰곰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찾으려는 교정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사람은 누구를 대하든 나쁘게 보려 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자신이 그런 나쁜 면을 갖게 된다.남의 나쁜 면을 말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도 그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좋은 면과 아름다운 면을 보려 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그 사람의 진가를 찾으려 애써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고 싶을 만큼의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남의 좋은 점만을 찾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을 닮아 간다.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언젠가는 자신도 좋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참으로 맑고 좋은 생각만을 가지고 우리의 날들을 아름답게 수놓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감격하여 코끝이 찡해져오는 맑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누구를 만나든 그의 장점을 보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많이 칭찬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말을 할 때마다 좋은 말을 하고, 그 말들에 가을밤 빗소리가 주는 계절의 진실만 담뿍 담는 예쁜 마음의 그릇이 온전히 내 것이라면 정말 좋겠다.



원본 기사 보기:jb-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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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2/01 [20:37]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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