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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위로
 
기고/ 김성찬   기사입력  2022/02/10 [15:06]

 

▲     © 전남방송

 

지나온 시간을 흩트려 놓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하나하나 주워 담아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 좌절, 희망, 실패, 성장의 모습들 중 하나 이상은 어떤 삶에서나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순간 공감을 하게 되고 위로를 받습니다. 더불어 희망까지 갖게 되지요.

 

우리는 경쟁을 통한 승자와 패자의 명과 암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되돌아 봄'의 시간 속에서는 위로와 희망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 다시 그 경쟁의 세계로 돌아가 그 사회의 일원이 됩니다.

 

우리네 삶은 가깝게는 가족, 친구, 지인, 동료, 누군지 모를 경쟁자 등 무수히 많은 존재들과 얽히며 살아갑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경쟁에서 패배시키기도 하며 성장해 갑니다. 때문인지 우리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TV 예능, 인터넷과 서점에 위로와 치유라는 단어가 범람하는 이유인지 모릅니다.

 

"네가 최고야, 할 수 있어, 네 탓이 아니야."

 

미국 한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현대인은 외부의 자극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고 합니다. 원하는 공감과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면 감정적 불안에 휩싸이며 냉정한 평가와 공감의 차이를 두려워합니다. 같은 공감 속에 있어야 하고, 위로의 말이 곧 삶의 밝은 모습으로 다가오며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어쩌면 경쟁과 견제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냉정한 평가와 조언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긍정적인 공감과 부드러운 말 한마디는 냉정한 평가보다는 달콤합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자 당사자는 그것을 더 찾으려 하고 상대방은 그 마음을 비추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물론 선입견과 편협한 시선으로 재단된 평가나 조언은 지양해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 글에서 볼 수 있듯 삶은 그저 달콤한 것만은 아닙니다. 쓰디쓴 삶의 한 부분도 어떻게든 목구멍으로 넘겨야 할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희망보다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누구나 마주하게 될 삶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혹독한 평가와 독설을 날려야 할 때 미움 받지 않기 위해 위로와 공감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보는 밤입니다.

 

영화 친구의 대사 하나가 떠오릅니다. 글의 내용과는 딱히 맞지 않지만 내용은 생각해 볼 만한 대사라 적어봅니다.

 

상택아~ 내가 제일 x 같은 때가 언젠지 아나? 내가 어릴 때 삼촌이 많아서 참 좋았거든. 그런데 중학교 때 가출을 하고 돌아오니까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 한 놈도 내를 머라 하는 놈이 없는기라. 그때 그 중에 한 놈만이라도 내를 패주기라도 했으면 그때 정신 차렸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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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2/10 [15:06]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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