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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시> 정승화 시인 '붉은 꽃 지다'
[전남방송.com=오현주 기자]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1/05/07 [10:31]
▲     © 전남방송

사진/ 정승화 시인

 

 

                      붉은 꽃 지다 

                             - 완경 玩經

 

 

                              정승화

 

 

  처음부터 꽃으로 태어났다

  하얀 여자가 깃발처럼 펄럭이고

  위태로운 붉은 첫눈이 내렸다

  꽃의 시작은 흐느끼는 강물의 노래였으나

  달의 무덤에서 태어났다

  벌거벗은 노래가 달의 무덤을 빠져나와

  부엉이가 깨어나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 때

  살점을 내어주고 신내림 받듯 붉은 꽃으로 태어났다

  모였다 흩어진 신음들이 꽃자리를 세심하게 돌았다

  휘어진 등허리에서 쏟아진 봄

  눈에 들이고 손에 움켜쥔 물결들

  오래전 심어 둔 거대한 뿌리가 흔들리고 

  울컥 울컥 붉은 꽃을 토해냈다

  무덤의 시작은 까마귀의 서식지가 되었다

  붉은 여자가 깃발처럼 펄럭이던 자리에

  위태로운 까만 두 번째 눈이 내렸다

  깊은 웅덩이를 지녔던 하얗고 붉은 여자가 

  까만 글씨를 토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꽃은 까마귀의 아침이 되었다

  겨울, 새들을 따라 걸음을 옮길 때

  모두가 은밀해지는 시간 곁에서

  차가워진 입맞춤을 달래주는

  뜨거운 데시벨을 심장에 새기고 가는

  이제는 새까만 여자

  은밀한 것들이 설레임이 되는 경계

  맥빠진 풍선들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

  울컥울컥 간절한 것을 토해낸다

  표류하는 밤의 이야기들을 몰고

  어둠은 꽃이 진 자리로 들어왔다

  툭 튀어나온 모서리 같은,

  아니 이제는 반질거리는 몽돌 같은

  낮에 대한 붉은 항변은 이 어둠 곁에서

  찬란한 무덤에 감정애도의 향을 피운다

  곡비哭婢처럼 서러운 붉은 꽃이 졌다

  빨간꽃이 뭉텅 져버렸다

 

 

 

 *약력/

 2006년 '문학21' 등단

 제14회 한국녹색시인상 수상

 제4회 한국시인상 수상

 개인시집으로 <무릎시계>,<꽃의 배꼽>

 한국녹색시인협회 회원

 (사)시와산문문학회 회원

 광화문시인회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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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07 [10:31]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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