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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개자추와 뗏목
 
김명진 호남대 초빙교수   기사입력  2021/01/31 [18:42]
▲     © 전남방송

 

한식의 유래를 말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개자추다. 그는 춘추시대 2대 패자인 진문공 중이에게 특별한 신하이자 동지였다. 19년 망명과 유랑 생활을 함께했고 양식이 떨어져 중이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고깃국을 끓여 주었다. 그는 진문공이 진나라 권좌를 차지한 뒤 바로 찾지 않자 논공행상에 참여하지 않고 노모와 깊은 산 속에 은둔했다. 진문공이 뒤늦게 그를 찾았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문공은 그가 사는 면산에 불을 질러 나오게 하려고 했으나 불에 타 죽으면서도 끝내 자리를 지켰다.

진문공은 왜 집권 초기에 바로 개자추를 중용하지 않고 뒤늦게 찾아 나서 결국 비극의 결말에 이르게 하였을까.

망명과 유랑시절에는 몸을 던져 자신을 보살펴주던 개자추 같은 심복인사들이 필요했다. 문공의 입장에서는 제나라의 왕이 된 후에는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경영능력이 뛰어난 신하가 우선 필요했을 것이다. 현명한 개자추는 일찍이 요즘 말로 ‘캠코더 출신의 낙하산 인사’가 문공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낙향했을지도 모른다.

선거기간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두주불사(斗酒不辭)하며 친화력을 바탕으로 지지를 유도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 활동에 능한 사람들이 인정을 받는다. 당선 후에는 시대 흐름에 맞는 창의적인 정책대안을 만들어 내고 현안에 적절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잡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당선자를 혼신으로 보좌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처럼 선거 맨파워(campaign manpower)와 경영 맨파워(managing manpower)는 기본 특성이 다르다. 오히려 배치된다. 이 둘을 겸비한 사람이 있다면 뜨거운 얼음과 같은 사람이다.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활동이 빨라지면서 덩달아 어느 후보에게 줄을 서야 하나 눈치 보는 인사들이 많다. 지역의 한 국회의원이 ‘대선 후보는 출신지역의 호오나 찬반이 기준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적합도와 가치와 노선으로 선택할 일’이라며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 입장을 밝혔고, 다른 의원은 ‘차기 대통령은 열정과 책임감, 균형감각,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며 이 기준에 이낙연 대표가 적절하다’고 공개 지지하면서 정치권에서도 본격적으로 대선후보 지지 커밍아웃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시대정신 적합도든 균형감, 경륜, 도덕성이든 자신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고 그 다음 누가 더 적합한지 본인이 주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고민 끝에 어렵게 결정하고 선거기간 중 개자추처럼 몸을 던져 헌신한다고 해서 모두 인정받고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4년 차가 되어도 아직도 노심초사하며 한 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친문 인사들도 여전히 많이 보인다.

선거가 끝나면 강을 건너고 나니 뗏목을 버린다고 서운해하는 선거 캠프 인사들이 반드시 있다. 개자추처럼 조용히 당선자 곁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배신감을 느끼며 선거 과정 중 알게 된 불법행위들을 제보해 파문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논공행상 불만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실패는 사실상 4년 전 예고되었다. 트럼프 대통령 진영은 당선 일주일 만에 논공행상을 벌이며 엄청난 권력 투쟁에 휩싸였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는 강 건너기가 최종 목표가 아니다. 강을 건넌 후에는 다시 산 정상을 향해서 행군을 시작해야 한다. 강 건너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가파른 능선을 오르는데 뗏목을 지고 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뗏목은 강을 건넌 후 날카로운 바위에 제 몸을 깎아 내어 지팡이로 변신해야 다시 선택받고 정상을 향해 함께 오를 수 있다.

끊임없이 혹독하게 변신할 자신이 없으면 그저 구경하면 된다. 그래도 꼭 대선과정에 참여하고 싶다면 나의 고유한 기준을 가지고 내안의 직관과 심장이 명령하는 후보를 선택하라. 내가 좋아서 선택하고 혼신을 다하면 그걸로 흡족할 수 있다. 보상은 덤이다. 능력도 성실성도 안 되는 사람이 한자리 얻을 대가만 기대하며 선거에 뛰어든다면 십중팔구 뗏목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본인을 위해서도 후보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도와 달란다고 덥석 뛰어들 일도 아니다. 후보는 귀신에게도 도와 달라는 사람이다. 뗏목 역할로 시작하지만 강을 건넌 뒤에는 지팡이로 변신할 준비를 처음부터 단단히 한 사람만이 개자추의 불행한 신세를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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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31 [18:42]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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