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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선 시인 <詩, 삶을 치유하다>
칼럼/ 오현주 기자
 
전남방송   기사입력  2020/10/08 [16:18]
▲     © 전남방송


 

버킷리스트, 0

 

 

김인선

 

시간을 거꾸로 오르면

공간이 사라지는 특이점을 만날 수 있을까

압축되고 압축되면 폭발할까

 

시초와 가장 근접한

마지막 층에 조용한 해오름방에 들어간다

혈압계에 껌뻑이는 이파리 하나,

유리창에 해가 환하다

 

행복할 확률 계산하던

스티븐 호킹의 집게손가락이 창에 붙어

삶과 죽음 경계의 이론을 풀고 있다

 

동물이 식물로 변해

허파에 남겨진 탄소를 뱉어내며 생각하는 마지막

목록이 무얼까

 

제 눈빛을 조절하는 동안

기가 막힌 진화가 정강이를 타고 오르자 자기편이 아닌

현실을 알았을 터,

 

물티슈로 문지르고 있는 호스피스

빈 살결마다 자작나무 껍질로 변하고 있다

반짝이는 복사열,

맥박 27

해가 더 환해진다

 

16

살아 처음 오른 높이에 내리깐 눈

원 없다는 듯.

 

 

<김인선 약력> ‘사람과 시동인

 

 

<칼럼> 오현주

 

김인선 시인의 버킷리스트, 0’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우주 탄생 이론인 빅뱅 이론과 칼 융의 동시성 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자칫 난해한 시가 될 수 있지만 두 이론을 통해 나름 흥미롭게 상상력을 확장한다면 개성적인 매력을 가진 작품으로 읽힐 것 같다.

 

1연에서는 우주 대폭발로 인해 형성된 현재 시점의 화자가 우주 생성 이전으로 돌아가 인플레이션을 압축한 특이점을 제시하는 도입부를 두고 있다.

 

2연에서는 동시성 이론이 가미되면서 해오름과 혈압계에서 껌뻑이는 이파리 하나가 동시적으로 관찰되고 있음으로써 제1연을 지지하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데, 현재의 화자가 그것을 관찰함으로써 동시성을 갖고 詩的 진술이 이루어진다. 아인슈타인과 스티븐호킹 시간순서보호가설과는 대립하는 동시성이지만, 우린 어디까지나 과거로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시인이므로 더는 골치 아프게 파헤칠 이유까진 없을 듯하다.

 

3연에서는 드디어 빅뱅도 칼 융도 아닌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등장하면서 결코 행복한 삶을 마무리하지 못한 그를 언급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풀고 있는 모습에 초점을 옮겨 인문적 진술이 짙게 깔리면서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버킷리스트, 0’을 드러낸 실체가 본격적으로 확연하다.

 

마치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시간을 연상시키는 듯한 시상을 펼치면서 1연과 2연에 배치한 장치를 독자 스스로 끌고 오게끔 유도하며 ‘0’ 무의 상태를 사유하는 팽창을 마지막 연까지 이끄는 치밀한 구조로 이루어진 시상이다김인선 시인의 내공을 짜릿하게 느낄 만한 탄탄한 필력이다.

 

마지막과 시작이 맞물려 있는 지점을 同時 한 시공간이 현재 같기도, 멀고 먼 태고인 것인 듯하면서도 미래인 것 같은, 묘한 감응이 일고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을 현재의 삶에서 반추해본다. 지금 누군가는 죽어가거나 죽고 또 누군가는 태어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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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08 [16:18]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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