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노준섭 시인 '보릿고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0/08/31 [22:23]
▲     © 전남방송

.

 

             보릿고개

 

                노준섭

 

아버지는

막걸리 한 됫박에 세상 시름 타서 마신 아버지는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콧노래를 부르며 터덜거리는

자전거를 끌고 동냥치고개를 넘으셨다

앞 발통에 달린 발전기는 아버지의 비척이는 걸음에는

빛을 내지 않고

달도 없는 하늘 별들이 무더기로 맴을 돌았다

어둠에 몸 감춘 동산에서 아카시아꽃 향기가 풍겨나왔다

오월이었다

보리는 여적지 파랗고 새끼들 얼굴은 자꾸만 누래져가는

오월이었다

막걸리 한 됫박으로 아버지는

아무것도 자전거 짐수레에 싣지 못 한 아버지는

생전 하지 않던 콧노래를 흥얼대는 아버지는

별무리의 소용돌이가 어지러워 개구리 우는 골창으로

몸을 부렸다

휘어진 자전거 살대 위에 가누지 못한 몸을 실은 아버지

눈으로 별무리가 쏟아져 들어갔다가 은하수처럼

솟구쳤다

세상에 가장 높은 고개

넘다 넘다 이지러진 설운 삶을 어깨에 지고

우지도 못 한 아버지 설움이

산등성이 송화가루로 피어올랐다

 

 

<評說> 오현주

 

 

노준섭 시인은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하여 시를 쓰는 좋은 시인이다. 한국인의 정서는 이 사무치게 내재되어 있다. 조상 대대로 民草의 삶이 그러했고 잦은 침략을 받아온 이 땅의 역사로 인해 형성된 특유의 정서일 것이다. 이는 한국어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한국 작가가 갖는 차별화된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모국어를 잃은 작가는 더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질곡한 생을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 인물은 바로 세상의 모든 어머니이자 나의 어머니다. 하지만 부모 모두 소중한 대상임은 틀림없으나 그동안 아버지를 조명하는 일에는 소홀해 왔기에 <보릿고개>는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몰래 울음을 삼킨 채 풍파에 쓰러져도 기어코 일어서야만 했을 아버지의 서러운 삶. 시인 그도 아버지의 자리에서 쓰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보릿고개를 넘는 아버지를 눈물겹게 그려낸 시인은 얼마나 울음을 반복하였을까. 시를 읽는 내내 만감이 교차하여 겸허해지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끌고 높은 언덕을 오르는 늙은 노새와 같다. 이지러진 속내를 감추고 묵직하게 처자식을 부양하던 그가 사실은 얼마나 연약하였던가.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자전거를 끌며 허공과 땅 사이에서 발버둥 쳤을 혼곤한 아버지를 시인은 <보릿고개>를 통해 정제된 언어로써, 슬프고도 아름답게 조명하였다. ‘생전 하지 않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버지는’ ‘우지도 못한 아버지의 설움이’ -

 

<노준섭 시인 프로필>

전북사대부고 졸업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2006년 시와창작 신인상

시와창작 작가회 회원

개인시집으로 낮에 빠뜨린 이야기

바람에 새긴 이야기

여울에 흘려보낸 이야기

공저 언어의 사원을 꿈꾸며’ ‘시와 창작 사람들’ ‘초록을 꿈꾸다’ ‘꽃진 자리에 누워

외 다수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0/08/31 [22:23]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강진 백련사, 동백꽃 후두둑~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