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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글벗 동인지 제9집 작품 둘러보기 - part 4
심승혁 시인 편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0/03/30 [13:41]

 

▲     © 전남방송
▲     © 전남방송


 

어느 날엔가 바람에 닿아

 

심승혁

 

 

 

어느 날엔가 바람에 닿아 창 하나 내어볼 생각에 조

심스레 뒤적이는 마음 안으로 나도 모르던 콩알 만 한

빛을 보았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기억의 뒤편 언제인가에 미필적 고의

로 이미 창 하나 내었거나

차갑게 할퀸 햇살에 덜 아물었던 생채기가 슬그머니

딱지를 떼어 냈거나

아니 아니, 밝음이 넘쳐났었던 그 어떤 행복한 날에

닫아놓지 않았던 거라면 더 좋을 이유입니다

 

그 창 한번 고맙습니다 세상이 조금씩 쏟아져 들어오

고 그 틈새로 당신 또한 들어와 앉았던 흔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뜯어진 거미줄 위로 내 마음 너덜하게 매달

려 있다 해도 이미 당신을 생각하느라 낡아 버린 허름

한 방 하나 툴툴 털어 또 한 번 내어주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새싹 같은 햇살처럼 빗방울 속 우산처럼 신선한 바람

의 가을처럼 설렘 같은 첫눈처럼 숨 같은 나처럼 오기

만 하면 될 당신은,

콩알 같은 마음에 나 있는 창으로 숭숭 바람 소리

로 잘도 찾아 들어와 우주처럼 차곡차곡 방을 차지하

셔도 좋습니다

 

어느 날엔가 바람에 닿아 문득 이런 일기를 적어간

시간을 발견하게 될 나는 내어주었던 방이 바람으로

가득 채워지면

 

당신이 오는 창 하나 또 내어놓고 있을 텝니다

 

 

<평설> 선중관/ 시인. 수필문학가. 시와글벗 회장

 

본 작품의 시제(詩題) <어느 날엔가 바람에 닿아>는 시와글벗문학회 동인지 제9집 표제(表題)로 선정되었다. '어느 날엔가 바람에 닿아'라는 기대치의 반영과 '바람에 닿아'라는 목적의식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심승혁의 이 시는. 610행의 산문율(散文律)을 지닌 자유시로 종결어미는 모두 경어체를 사용하여 여성스러운 어조를 띔으로써 애절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심 시인의 다른 여러 시편과 대조해 볼 때 새로운 색채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경어체를 사용하는 작품은 주로, 강렬한 의지력의 표현이나 짙은 호소력, 그리고 심각한 고뇌와 고조된 정감을 표현하고자 할 때 쓰는 수법으로, 그 어조는 극히 여성적이지만 정서면에 파고드는 호소력은 오히려 크게 느껴진다.

 

경어체를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은 한용운의<님의 침묵>으로,"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조국을 상실한 시대에 '()'에 대한 그리움을 연가풍으로 노래한 작품으로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애절한 사랑의 정감을 더욱 깊게 느껴지게 한다. 물론 한용운의 ''은 잃어버린 조국이나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 해석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심승혁 시인의<어느 날엔가 바람에 닿아>이 작품 역시, 이루어야 할 어떤 꿈과 기대, 당신으로 표현되는 대상과의 만남을 소망하는 갈망이 애절하면서도 호소력 있게 표현되고 있다.

 

"어느 날엔가 바람에 닿아 창 하나 내어볼 생각에 조심스레 뒤적이는 마음 안으로 나도 모르던 콩알만 한 빛을 보았습니다."라는 제1연의 시구(詩句)와 마지막 행의 "당신이 오는 창하나 또 내어놓고 있을 텝니다"라는 시구에서 보듯, 이 시의 주요 시어(詩語)'바람' '' '당신'이다.

 

바람이란 ,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것을 동반한다. 시원함과 신선함, 꽃내음과 숲향, 비와 구름 등. 그래서 바람은 늘 혁신과 새로움의 기대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인은 그 바람에 닿을 시기를 "어느 날엔가"로 표현하고 있다. 시기를 못 박지 않았지만, 어느 날 반드시 닥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오히려 애틋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 바람에 닿아 할 일은, 바람과 함께 올 '당신'을 맞이할 ''을 내는 것이다. 이 시의 주된 내용이다.

 

새싹 같은 햇살처럼 빗방울 속 우산처럼 신선한 바람의 가을처럼 설렘 같은 첫눈처럼 숨 같은 나처럼 오기만 하면 될 당신은,

콩알 같은 마음에 나 있는 창으로 숭숭한 바람 소리로 잘도 찾아 들어와 우주처럼 차곡차곡 방을 차지하셔도 좋겠습니다

 -<4>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 그 당신이 화자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의 의미가 단순 대상인 연인이 아닌, 즉 국가나 절대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 시의 '당신'역시 연인의 대상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이것은 오히려, 바람이라는 자연 현상이 몰고 오는 신선함처럼, 고요히 찾아오는 마음의 안위와 평안, 별질되지 않는 행복이 늘 새롭게 마음속에 깃들길 원하는 것일 수 있다.

 

시인은 21행에서'차갑게 할퀸 햇살', 42행에서는 '콩알 같은 마음'이라는 반어법적 문체를 쓰고 있다. 차갑게 할퀸 햇살이란, 밝음이 넘쳐났었던 그 어떤 행복한 날에 얻은 생채기를 의미하는 것일 테고, 콩알 같은 마음이란 조바심에 대한 표현이다. 기대하는 바가 크면 조바심도 크기 때문이다.

 

이렇듯 심승혁 시인의< 어느 날엔가 바람에 닿아>는 허공에 가득 찬 바람, 그 바람이 몰고 올 새로운 파장이 좁아터진 마음속에 들어와 삶의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기원의 시이다. 당신이라는 삶의 기대치가 나약한 인간의 심성에 늘 깃들어 항상 신선하고 새롭게 살고 싶은 갈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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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30 [13:41]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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