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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역에서
< 今週의 시 > 한예인 시인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0/02/09 [17:51]


    

                                               원동역에서

 

                                                                        한예인

 

 

꽃잎 떨어질까

기차도 경적을 쉬어 가는 곳

 

매화가지 사이로 강물은 흘러

만개한 꽃잎은

끝이 없어라

끝이 없어라

 

벌떼 같은 꽃송이들이

강물 위로 떨어질 때

나는 대합실에 앉아 어느 요절한

시인의 시를 읽으리

 

너무 늦은 눈물로

다시 찾아 오마 던 시인의 고향

오늘은 그의 시가 꽃잎에 젖는다

 

 

< 평설 >

선중관 /시인. 수필문학가. 시와글벗 회장

 

문학작품에 역이 등장하는 작품은 시와 소설과 노래 가사를 막론하고 이별과 만남, 기다림과 아쉬움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역이 있는 곳은 그 지역의 중심이며 상권이 발달한 곳이기에 떠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역은 사연도 많고 이야기도 많다.

 

이렇듯 역은 마중할 수도 배웅할 수도 있는 장소이지만, 문학작품에서는 만남보다 이별에 대한 것이 더 많고, 기쁨보다는 슬픔에 대한 줄거리가 더  많다. 그 이유는 작품 속의 슬픔이 내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만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밝히면서 스스로 위안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의 힘이며 긍정적 요소이다.

 

역에 대한 다른 시 작품을 예로 살펴보면, 곽재구 시 <사평역에서>는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쓸쓸한 기차역 대합실의 정경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추억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고달픈 삶의 애환에 연민을 느끼며 한 줌의 톱밥, 한 줌의 눈물을 난로에 던지는 행위를 통해 이들을 위로한다. 작품 속의 역전 대합실은 슬프다. 그러나 그 슬픔이 곧 슬픔을 극복하는 위안이 되는 것이다.

 

여기 한예인의<원동역에서>도 슬픔이 보인다. 화려한 매화가 등장하지만, 매화는 긴박하도록 그 수명이 짧. 피면서 곧 져버릴 매화, 그래서 시인은 꽃잎 떨어질까/기차도 경적을 쉬어 가는 곳이라고 하였다.

 

실제 기차가 꽃잎 질 것을 염려했다기보다는 그것은 시인의 염려이며, 별리(別利)에 대한 시인의 애달픈 마음인 것이다.

 

매화가지 사이로 강물은 흘러

만개한 꽃잎은

끝이 없어라

끝이 없어라-<2>.

 

2연에서 보여주고 있듯 만개한 꽃잎은 끝없이 펼쳐지고 매화가지 사이로 흐르는 강물은 누가 봐도 아름답고 평온한 정경이다. 그 끝없는 평온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테고,  일년 열두 달이 그대로만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시인은 만개한 꽃잎,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 평온이 끝없기를 내심 바라지만, 그러나 세상 이치는 늘 변하는 법. 계절도 한 철에 머물지 않고 사계를 이어가며, 꽃이 필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고, 따사로운 봄날이 있으면 추운 겨울도 있는 것이다.

 

사람도 한 곳에만 머물지만은 않는다. 이 역을 통하여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오고갔듯, 내 곁을 스쳐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 중, 때론 아픔과 상처를, 때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 사람도 있다.

 

결국 시인은, 매화꽃 휘늘어진 강가의 환상적인 정경 속에서 꿈을 꾸는 듯 황홀했던 몽환적 상태를 벗어나 현실을 읽는다.

 

벌떼 같은 꽃송이들이

강물 위로 떨어질 때

나는 대합실에 앉아 어느 요절한

시인의 시를 읽으리-<3>.

 

슬픔이란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느끼는 상대적 감정이다. 불행에도 마찬가지이다. 원래부터 불행이라고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은 그것이 불행인 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꽃잎처럼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꽃은 지고 알상한 가지만 남아 홀로 바람을 맞아야 할 때도

오기 마련이다. 저 벌떼 같은 꽃송이들이 강물 위로 떨어지듯, 인생도 가고 오는 이치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어느 요절한 시인의 시를 읽으며, 인생무상(人生無常)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이별에 대하여, 깊은 상념에 빠져보는 것이다.

 

한예인 시인의<원동역에서>는 결국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잠재한 삶에 대한 성찰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화려했던 꽃잎이 지듯, 결국 이별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요절한 시인의 생애가 지고, 또 하나 시인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저버린 생애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인생은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꽃잎 피고지는 역전에서 삶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달관이며 위대한 승리이다.

 

시의 함축성과 간결함, 그리고 시를 왜 운문(韻文)이라 하며, 왜 아름다운 언어라고 하는지 그 한 예를 보여주는 듯한 한예인의 시<원동역에서>는 몇번을 읽어도 그 시심(詩心) 깊은 곳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다. .

 

▲     ©전남방송

 

<한예인 시인 프로필>

현재 울산 거주

시와글벗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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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09 [17:51]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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