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이지용 시인이 생계를 꾸리는 터전이다. 어쩌면 그곳은 시인인 그에게 다소 걸맞지 않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명하게 붉은 살코기를 아무렇지 않게 썰고 있음은 지극히 즐거운 호기심으로 상상을 자극한다.
그는 시인이란 존재가 꽃잎 한 장일지라도 쉽게 부술 수 없음이 괴리감으로 다가오곤 하지만 고기를 썰면서 내면에 도사린 아름다움을 표출하고 있다는 신념을 굳건히 세우고, 그로 인하여 형성된 작가 의식을 소중히 여긴다.
날 것을 비추는 조명 아래서 주검을 싱싱한 육으로 부활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영감을 얻고, 시적 본능으로 전율할 때, 음악을 들으며 시 쓰는 일은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듯이 이 시인의 작품 세계에는 그것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인은 삶의 저변에서, 낮게 신음할 줄 알고 자지러질듯 높은 옥타브의 시를 능숙하게 써내고 있다. 여느 시인이 미처 알지 못하는 음역의 소리를 내는 특화된 악기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쓴다‘를 그저 이행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온갖 사물과 현상이 제 자신을 관통한 언어로써 제대로 받아 적을 줄 아는 시인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 안에 사람과 시가 있음을 이해하며 시를 쓴다.
이 시인은 자비 출판이 현실인 작금의 실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으며 시인으로서의 자질이나 시를 진중하게 쓸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등단이라는 목표를 두고 싶지 않다는 겸허한 심정을 내비췄다.
더불어 그의 선친께서 습작에 그친 시를 남기고 돌아가셨기에, 자식인 자신을 통하여, 미처 못 다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품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 축축한 고독과 탐미적 사랑에 대한 탐구는 아름다운 것이다.
제 자리에서 묵묵히 시를 쓰고 사랑하는 그가 있음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그의 마니아층 독자가 응원하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 시인이 세상과 문단에 던지는 흰 조약돌 하나가 결코 헛되지 않길 바람하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 그날에
이지용
그럴 수 있다면
난,
나는 안개비 내리는 날
발그레한 얼굴 지기 전,
젖무덤 한껏 탐스러울 때
당신의 달콤한 거친 호흡과 세상을
바꿨던
야무진 순간이
안개처럼 사라지기 전
불끈한 그 품에서
천년 같은 아득한 밤을 보내고
뿌연 그날
둘만 아는 그곳에서
비처럼 땅으로
영영,
땅으로 스미고 싶어
내 가져갈 기억 하나
그만 아는
그 기억하나만 품고
안개비 내리는 그날
2. 사랑덫
이지용
기지개를 켜다 난 쥐처럼 당신은,
짜릿하고 위험해
마치 사랑 끝에는 통증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그라져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는 이불 속
아직도 당신을 품은 내 속
아내, 시간이 약이라는 슬픈 전설도
함께 꿈틀거리는 그 속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내 속
어쩌면
기지개와 당신은
한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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