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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지나간 자리_뱅크셔나무처럼
 
강대선   기사입력  2018/10/12 [08:38]

 

뱅크셔나무처럼

 

나희덕

 

 

 

산불이 나야

비로소 번식하는 나무가 있다

 

씨방이 너무 단단해 뜨거운 불길에 그을려야만

씨를 터트린다는 뱅크셔나무

 

제 몸에 불을 붙여서라도

황무지에 알을 슬고 싶은 뱅크셔나무

 

장전된 총알들, 그러나

한번도 불길에 휩싸여본 적이 없는 씨방

 

모든 것이 타고난 뒤에야

검은 숯 위로 연한 싹을 내밀고 싶은

 

 

 

 

나희덕 시인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뿌리에게로 등단. 2014년 제 6회 임화문학예술상 등 수상. 현 조선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예창장학과 교수.

 

 

 

 

 

 

 

 

詩說 강대선

 

▲     ©강대선

 

 

 

 

 

 

 

『시와 사람으로 등단. 구름의 공터에 별들이 산다외 시집 3. 모던포엠 문학상, 국제펜광주 올해의 작품상, 광주시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여수해양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현 광주여상고 교사.

 

 

 

 

 

 

모든 것이 타고 난 후에야 씨를 뿌릴 수 있는 뱅크셔나무, 절망의 극한에 서서 희망을 바라보는 소재의 건강성이 시의 구조를 한층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시인은 뱅크셔나무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재인식하게 만든다. 희망은 아직 오지 않을 불길을 기다리는 뱅크셔나무의 기다림이다.

 

 인식된 것의 재인식은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를 불러온다. 화자는 씨방이 너무 단단해 뜨거운 불길에 그을려야만/ 씨를 터트린다는 뱅크셔나무를 통해 희망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기다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 기다림과 희망은 아니다. 희망이 있기에 기다림이 있는 것이다. ‘번식이야말로 생명들의 의무가 아니던가.

 

뜨거운 불길에 그을려야만얻을 수 있는 희망이라는 기회는 아픔을 통해서 체득하는 깨달음을 수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태워지는 아픔을 통해 비로소 씨를 퍼트리는 숙명을 타고난 것이다.

 

  언제일지 모르는 불의 시간을 뱅크셔나무는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이 희망으로 바뀔 시간은 불밖에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언젠가는 이 숲속이 불에 휩싸일 것을. 그 시간은 어쩌면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의 기다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타고난 자리에서 비로소 씨를 뿌리는 뱅크셔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경이롭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검은 숯위에 연한 싹이 올라오는 순간을 바라보는 일을 상상해 보라.

 

 시인은 그러한 존재이다. 모든 것이 절망으로 바뀌더라도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람들. 그래서 시인이 말하는 뱅크셔나무는 희망을 말하는 모든 이들의 이름이며 오늘의 절망 속에서 내일을 건져 올리는 이들의 기다림이다.

 

어느 시대에도 희망이 다 타버린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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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2 [08:38]  최종편집: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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