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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지나간 자리_나무를 볼래
 
강대선   기사입력  2018/10/08 [09:37]

 

나무를 볼래

 

변영희

 

 

숲을 보라고?

아니 나무를 볼래

 

바람의 지문 공기의 지문

꽃의 지문 우체통의 지문

그림자의 지문

지문, 지문이 통과하는

 

휘파람 같은 시간은 꼬리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지

 

직립의 고독 직립의 지루함

눕고 싶은

엎드리고 싶은

낭창 구부리고 싶은 나무들이 우두둑

 

햇빛이 있는 집을 갖고 싶어

빛이 망토처럼 드리우는 방

빛의 세례란 그런 거

 

우울이 곰팡이처럼 번지는

e편한세상이 덮쳐버린 방

그건 슬픔의 씨앗이 되기도 해

the 편한 세상 아래 사는 청춘은

잠이 많아 참 다행스럽지

 

졸음에 겨운 나무를 거느린

이 편한 세상, 안녕하신가?

 

 

변영희 시인

 

전라남도 장성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2010년 계간 시에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는 y의 진술이 있다.

 

 

 

 

 

 

詩說 강대선

 

 

 

▲     ©강대선

 

 

 

 

 

 

 

  『시와 사람으로 등단. 구름의 공터에 별들이 산다외 시집 3. 모던포엠 문학상, 국제펜광주 올해의 작품상, 광주시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여수해양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현 광주여상고 교사.

 

 

 

 

 

숲을 보라고 하지만 때론 나무를 봤을 때 구체의 실상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화자가 말하는 지문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다. ‘바람,공기,꽃, 우체통, 그림자의 지문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화자가 말하는 지문들은 휘파람 같은 시간들처럼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헛된 희망과도 같은 것이다.

 

바람도 꽃도 이 세상에 지문 하나 남기고 싶으나 그 지문들은 곧 사라져 버린다. 이 세상은 희망을 꿈꾸기엔 너무 버거운 곳인가? 화자가 말하는 직립의 고독’ ‘직립의 지루함은 무엇일까. 현대인들의 고독과 그 고독 속에서 위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화자의 지루함이 나타나 있다.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혹은 경쟁력을 잃어버린 나무들은 우두둑가지가 꺾이고 만다. 패배자의 지문이 찍히는 것이다.

 

패배자라고 불린 이들이 사는 곳은 빛이 망토처럼 드리우는 방이다. 반지하나 지하의 방으로 내몰린다. 세상은 e편한세상으로 환해가지만 패자들의 지하는 우울이 곰팡이처럼 번지고 있다. 슬픔과 불행은 남과의 비교에서 온다고 했던가. the 편한세상의 반대편에 사는 청춘들은 활기를 잃어버리고 을 잔다. 이 잠은 부정적이고 무기력하지만 이 잠은 the편한 세상을 이겨내고 견뎌내는 힘이기도 하다.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터로 향하는 나무들, 언제 가지가 꺾일지 알 수 없는 나무들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회. 시인의 눈은 나무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더더더 편하고 더더더 높은 고층 아파트를 위하여 더더더 편한 세상을 위하여 우리의 시간과 행복은 더더더 아래로 내려가는 슬픈 사회. e편한 대한민국,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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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08 [09:37]  최종편집: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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