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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지나간 자리_유품정리인
 
강대선   기사입력  2018/09/21 [10:57]

 

유품정리인

 

 

문정영

 

 

어느 죽음 앞에서 유품정리인이 자꾸 헛손질을 한다.

마당가에 심어 놓은 꽃이며 나무는 그 자리에서 백 년을 꿈꾼다.

쓸쓸하다는 것 다 까먹어 더는 쓸쓸한 것들 털어 낼 수가 없다.

 

꽃과 나무는 이삿짐이 없다.

사는 곳이 천국이다.

몸 비운 자리에서 다른 몸 일어나 눈 비빈다.

고독사 자살 살인이라는 꽃잎은 없다.

썩는 일이 신 벗는 일처럼 쉬워서 그들은 신의 이름을 사모하지 않는다.

 

이번 이사는 한생을 비우는 작업이다.

그들이 준비하는 동안 한 사람의 생업은 생기를 잃는다.

사는 동안 마지막 이삿짐은 싸놓지 못한다.

 

나는 남길 것이 햇빛 바람 시어 밖에 없다.

어두워지면 그마저 사라지고, 비가 오면 쓸려 나갈 소망뿐이다.

 

 

 

 

시인 문정영

 

장흥 출생. 1997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잉크』 『그만큼등이 있다. 현재 시전문지 계간 시산맥발행인. 201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詩說 강대선

 

▲     ©강대선

 

 

 

 

 『시와 사람으로 등단. 구름의 공터에 별들이 산다외 시집 3. 모던포엠 문학상, 국제펜광주 올해의 작품상, 광주시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여수해양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현 광주여상고 교사.

 

 

꽃과 나무는 죽은 자신이 유품이다. 죽음이 당도한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기 때문이고 꽃이 있던 자리에서 꽃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거추장스러운 유품을 죽음의 자리에 남긴다. 이 시는 유품을 남기는 쓸쓸한 인간과 사는 곳이 곧 천국인 자연과의 대비가 이루어져 있다. 화자의 말처럼 고독사와 자살과 살인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신은 쓸쓸하고도 고독한 인간이 남긴 희망이라는 유품의 이름일는지도 모르겠다. 꽃과 나무는 쓸쓸하고 고독할 이유가 없으니 신 또한 사모하지 않는다.

 

사는 동안 마지막 이삿짐은 싸놓지 못한다.” 인간이 남겨놓은 유품을 인간이 정리해야 하는 까닭이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어리석게 뒤를 돌아보는 것이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지상을 한 발짝 남겨놓고 뒤를 돌아보는 오르페우스처럼 불타는 소돔을 돌아보는 룻의 아내처럼 벼락치는 집을 돌아보는 며느리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삶의 미련을 가지고 뒤를 돌아본다. 인간이 돌아보는 미련들이 화자가 말하는 유품일 것이다.

 

화자는 말한다. ‘미련을 남기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시인에게 “햇살 바람 시어면 되지 않겠냐고. 그 마저도 비가 오며 쓸려 나가지 않겠냐고. 인간은 꽃과 나무가 하찮다고 아무렇게나 꺾고 잘라내지만 정작 미련한 것은 인간이다. 제 몸 하나 정리할 줄을 모르니.

 

유품을 정리하는 미련한 손길 하나가 자꾸 헛손질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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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21 [10:57]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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