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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지나간 자리_빨간 모자 어디 가니?
 
강대선   기사입력  2018/09/09 [08:35]

 

빨간 모자 어디 가니?

 

김지요

 

 

꽃을 따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가위질 했다 숲속의 시간은 밀랍처럼 끈적거렸다 스스로 길을 잃은 미로, 할머니 따윈 잊었다 눈을 빛내는 늑대와 만났다 아가리를 벌리는 할머니와 만났다 깨고 보니 할머니 뱃속이었다 할머니 뱃속에 할머니가 있다니 사방이 어둠이었다. 어둠이 난간 어둠의 기둥 어둠의 계단 발을 헛디디면 안돼 누군가 배를 갈라 나를 구해줄 것 같았다 떨리는 손에는 빨간 모자 아직 숲이었다 떡을 내놓을래 꽃을 줄래 아님 심장을 보여줄래 할머니는 꽃을 좋아해 늑대는 꽃을 사랑해 모르는 사람관 얘기하지 마

 

할머니 뱃속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늑대는 배부르게 잘도 잔다 그런데 왜 아직 숲일까 꽃 따윈 잊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빨간 모자를 쓴 사람들이 아직 어린아이인 채로 숲을 서성였다 모두가 서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중얼거리는 혼잣말들은 빨리 시들었다.

 

 

 

김지요

 

전남 보성 출생. 2008애지로 등단. 시집으로 붉은 꽈리의 방이 있다.

 

 

 

 

 

 

詩說 강대선

 

▲     ©강대선

 

 

 

 

 

 『시와 사람으로 등단. 구름의 공터에 별들이 산다외 시집 3. 모던포엠 문학상, 국제펜광주 올해의 작품상, 광주시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여수해양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현 광주여상고 교사.

 

 

 

 

현대인들은 불안을 병적으로 지니고 살아간다고 한다. 이러한 불안의식에서 도피하기 위해 빨간모자는 자꾸만 뱃속으로 들어간다. 태아가 자궁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일처럼 안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불안에서 오는 금기들은 나와 세상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 단절은 또한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이는 일이다. “모르는 사람관 얘기할 수 없는 외부의 단절과 서로에 대한 의심이 현대인들의 고립을 더 심화시킨다.

 

화자는 이것을 이야기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늑대와 빨간 모자와 할머니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불안을 확대시키고 심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소문일까? 언론일까? 아니면 우리들 자신일까우리는 스스로 보이지 않은 불안의식을 키우며 스스로 늑대의 뱃속에 들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불안은 이야기처럼 왜곡되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아이가 되어 모두가 서로를 발견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다벽으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벽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중얼거리는 혼잣말들은 빨리 시들어 버린다.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 불안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러니 하게도 모두가 불안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아직은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벽을 깨뜨리는 일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인식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안으로 단절된 사회에 대고 시인은 말은 건다.

 

빨간 모자야, 너 어디로 가니? 나와 함께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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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09 [08:35]  최종편집: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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