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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천년의 이야기 11>
 
아동문학 박사 양인숙   기사입력  2017/12/17 [15:30]

 

                                       땅                                                                                          (양인숙/ 아동문학박사)


우리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따로 분리시킬 수도 없다. 누구나 보이지 않은 끈으로 우주와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 고리 안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고 문화를 만들어 간다. 역사와 문화 안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참 안타까운 분들이야’ 후대사람들이 기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화순 땅에는 13개 읍면이 있다. 그 읍면마다 참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 어쩌면 천연동굴이지 않을까?


화순 북면 서유리에 있는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 백악기 시대의 퇴적층에서 수각류, 용각류 등 다양한 공룡의 발자국 1,800여 점이 관찰되었으며, 70여 개의 보행렬이 확인되었다. 특히 육식 공룡인 수각류의 발자국 밀도가 매우 높게 분포되어 있으며 발자국 또한 이동 속도 및 가속도 연구 등 학술적으로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국 백악기 공룡을 연구하는데 큰 가치를 지니며 학술적 및 자연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2007년 11월 9일 천연기념물 제487호로 지정되었단다.
북면에는 백악기의 공룡의 자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연동굴이 있다.


 너무 궁금해


동굴 속에 비밀
새 나갈까봐
아무나 못 들어가게 입을 줄였다.
살짝 머리만 들이밀어
그 비밀 조금만 알고 싶어도
2억 년 전 비밀
알려주기 싫다고
아니 쉽게 알려줄 수 없다고
어둠으로 완전무장 해 버렸다. (양인숙, 2017.12.8.)


작은 동굴 하나에도 2억 년 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데 우리 땅 어디엔들 그 만한 비밀 간직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북면 수리 산 13번지에 천연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보고 싶었으나 볼 수 없었다. 문화재발굴 전문 조사단이 아니면 들어 갈 수가 없단다. 그런데 어디쯤에 어떻게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고 싶어 방법을 연구했다. 군청 담당자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들어가지 못한단다. 우선 동굴을 품고 있는 산이라도 보고 싶어 졸라서 가고자 했다. 그러나 하늘이 막는 일은 하면 안 된다. 어렵게 약속을 하고 군청민원실 앞에 도착을 했는데 비가 내렸다. 전화를 했다. 비가 온다고, 비가와도 올라갈 수 있냐고, 못 올라간다고 했다. 다음 날을 잡기로 하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천연동굴 가 보는 것은 뒤로 미루고 이번에 쓸 글 소재를 바꾸기로 했다. 순서쯤 바꾼다고 잘 못 될 것은 없다. 12월 눈발이 날리면 생각나는 곳, 능주 조광조유허지로 향했다.

▲     정암 조광조 유배지 © 전남방송


어려서부터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 ‘너는 학포의 17세손으로 꼭 알고 있어야 한다.’로 시작 되는 학포선생과 정암선생의 우정(?) 의리(?)에 대한 이야기는 듣다가 잠이 와서 꾸벅거리면서도 들어야 했다. 그 때는 몰랐다. 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를.

 

역사 속에서 두 분의 정과 의에 대해 실현하셨던 내용을 알고부터였을 것이다.

“너무 급하게 바꾸려하면 탈이 난다.”
나라를 위한 일이고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한 일이지만 급하게 하려다보면 탈이 나게 되어 있다. 당시의 상황을 지금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주초위왕(走肖爲王)’ 이런 억지에 같이 개혁을 해 가던 신하에게 사약까지 내릴 수 있을까? 정암선생이 사약을 마시던 1519년 12월 20일, 그 날도 오늘처럼 눈발이 날리지 않았을까? 그 광경을 학포선생은 눈 부릅뜨고 보고 있지 않았을까?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안으로 들어서니 절명시가 나를 맞는다.

 

임금을 어버이같이 사랑하고
나라 걱정하길 내 집 걱정하듯 했도다
밝고 밝은 햇빛이 세상을 굽어보셔
거짓 없는 내 마음을 훤하게 비춰주리 <정암 조광조>
 

▲     © 전남방송

유허지 안에 걸린 절명시 현판

절명시 한편에 자신의 결백을 그대로 담아두고 약사발을 드셨을 선생님, 어명이 지엄했던 시기라고는 하지만 37세의 젊은, 지극히 충성스러웠던, 믿을만한 신하를 한 낱 나뭇잎에 그려진 네 글자로 목숨까지 거두게 했을까? 역사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무지한 질투와 욕심이 빚어낸 우리들의 아픈 과거이다.


정암선생에게 사약을 내린 중종은 어땠을까? 편안했을까? 학포할아버지는 삼족이 멸할 수 있는 사약 받은 분의 시신을 거두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암 선생이 사약을 받던 그 시각(1519년 12월 20일) 노루목 적벽에 도착한 신재선생의 마음은 어땠을까?


훈구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이 다 모난 돌들이지 않았을까? 그 모난 돌(?)이 모여진다면 더 큰 노둣돌이 되지는 않을까?

 

기묘사화에 연류 되었던 분들의 기묘한 인연들을 생각하며 영정 앞에 향 피우고 돌아 나오는 길 추모비에글씨가 나에게 전한다. 잊지 마라고,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이니, 잊지 마라고, 역사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지혜를 찾는 자 만이 진실한 사람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그 지혜는 쉽게 함부로 찾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뒤돌아보는 나에게 자꾸만 채근을 한다. 
 

 

▲     © 전남방송

                                              정암선생 추모비
돌부리 걷어차면 제발이 아프겠지
모난 돌도 힘을 모으면 노둣돌
마음이 모아진다면 바다보다 넓은 미래! <양인숙 20171216>
 
나는 글로써 답을 한다. 새벽에 일어나 오늘 일을 생각하며 새겼던 글
모난 돌도 모아지면 든든한 노둣돌이 되지 않을까? 모난 마음들이 모아진다면 이 땅을 가꾸어나갈 지혜 한 조각 얻어지지 않을까? 

 

내리는 송이송이 마다 떠오르는 낱말은 소통과 화합, 더불어 사는 지혜, 모난 지혜도 모아지면 우리들의 미래는 좀 더 넓고 밝지 않을까?
땅에 닿아 하얗게 쌓이는 눈 위에 엷은 발자국 남는 것을 보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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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17 [15:30]  최종편집: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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