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뉴스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축년 ‘바다칸타타’ 힘찬 항해 예고”
<마이 웨이> 박종규, 한국출판의 선구적 대혁신 ‘큰 보람’
 
작가 박종규 oilgas@hanmail.net   기사입력  2009/01/06 [07:08]
 
 
▲ 박종규 작가의 '바다칸타타'는 한국출판에 혁신적 일정표를 제시한 것으로서 그 비전은 사해동포주의를 지향한다.

 
■ 한국출판의 대서사시 ‘바다칸타타 빅뱅’의 순간들 ■ 

 
◇ 수필, 빠져나갈 틈 없는 고해서 

말로 표현해 낼 수 없는 내밀한 울림을 꾸밈없이 드러내야 하는 글이 수필이다. 시나 수필이나 소설이나 글쓰기라는 것은 혼신의 기를 쏟아 붓는 힘든 작업이지만, 수필은 내면의 솔직한 토로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기고백만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고,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칸타타는 지난 5년간 문예지 등에 발표한 수필을 모아 다시 퇴고를 거쳐 출간한 첫 에세이집이다. ‘첫’이라고는 했지만 위와 같은 맥락에서 나로서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수필집이다.

 
◇  ‘바다칸타타’와 경쟁했던 제목 ‘6664’ 

독자는 어떤 책을 선택할까.

책이 선택되는 첫째 조건으로‘제목’을 지목할 수 있다. 제목에 따라 책의 표지 분위기나 이미지가 좌우되기 때문에 그 비중은 막중하다. 작가의 입맛에 맞는 제목이 아니라 독자에게 선택되어질 수 있는 제목이 필요하다.

‘바다칸타타’와 끝까지 경쟁했던 제목으로 ‘4부6664’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소유했던 차의 차량번호다. 이 글자들은 모두 특이한 의미어로 조합되어있다. ‘4’라는 숫자는 소위 죽음의 숫자이고, ‘부’라는 문자도 賻로 읽혀지고, ‘666’은 잘 알려진 대로 악마의 숫자이다. 게다가 마지막 마감 자 역시 ‘4’로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이 번호의 차량을 7년 동안 애마처럼 몰았으며, 큰 사고하나 없었는데 새 차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이별하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는 숫자의 의미화가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숫자만 취하여 ‘6664’로 하는 제목이 강력 대두되었으나 트렌드 보다는 의미성에 더 비중을 두기로 하였다. 결국 작품 제목중의 하나인 ‘바다칸타타’를 책의 타이틀로 결정 하게 되었다. 바다 칸타타는 바다가 연주해내는 장대한 교향곡의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어 내용면이나 서사수필의 제목으로서 적절할 것이라 생각했다.

 
◇ 미술전공 작가! 출판계 ‘아방가르드’ 물꼬

제목이 결정되자 독특한 서체를 개발해야 했다. 바다칸타타를 이미지화 시킬 수 있는 서체를 얻기 위해 화선지와 붓을 가지고 서예체, 컴퓨터에 내장된 서체, 필기체 등으로 수많은 조합을 해 보았으나 꼴이나 가독성에서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결국 낙점된 서체는 나무젓가락을 팬처럼 다듬어 먹물을 찍어 그리듯 쓴 서체였다. 이 서체는 자유분방함과 부드러움, 깔끔하지 않은 소탈함의 이미지가 녹아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훌륭한 캘리그라피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다음, 표지를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 나는 대학에서 에디토리얼디자인을 강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야말로 독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자기암시를 걸고 있었다. 그리하여 힘든 결정을 내렸다. 미술대학을 나온 작가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표지를 하나하나 그려주는, 원화의 출간을 감행하자고. 

그러면 어떤 이미지를 표지에 나타낼 것인가. 책상위에는 이미지 시안 스케치들이 수북이 쌓여나갔다. 어떤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효과적일까. 너무 구상적(具象的)이면 유치해지니 추상적인 이미지를 찾아야 했다. 한 권 한 권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단순화되고 상징적인 그림이어야 했다. 제목 서체와도 조화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은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바다색 원형 아홉 개가 규칙적으로 놓여 진 그래픽 느낌의 이미지였다. 

 
◇ 편집의 혁신 ‘상식을 뛰어넘어’

▲ 텍스트와 오디오의 결합체
국립재활복지대학에 강의를 나가면서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시각 장애우들을 위한 책이 되었으면 하고. 점자책은 비용이 많이 들었다. 들려주는 수필집, 바로 그것이었다. 성우를 동원하여 작품의 일부를 낭독, CD로 첨부하는 것이다. 장애인들 뿐 아니라 운전자들도 같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50 작품을 주제별로 세 챕터로 분류하고, 작품마다 작품번호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페이지 번호, 즉 쪽수를 빼기로 했다. 쪽수가 없어도 되는데 쪽수를 넣는 것은 선입관에 지나지 않았다. 장편소설도 아니고, 두 세 장마다 새 글이 시작 되는데 쪽수가 굳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 소외계층이나 특정 독자들을 찾아가서 직접 표지를 그려주는 퍼포먼스를 하자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이 가능 하려면 그림이 다 마르기까지 5분을 넘기면 안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빨리 마르는 물감으로 마블링칼라가 결정되었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붓의 제작에 들어갔다.

기존의 붓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소프트한 질감의 처리를 위해서 흰 천으로 목화송이처럼 솜을 대에 묶었다. 꼴뚜기를 나무젓가락에 끼운 모양의 붓이 만들어졌으나 이 붓은 재사용이 불가능했다. 습기를 머금은 솜은 탄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용된 후 버려지는 붓의 머리는 모두 모아두기로 했다. 청색과 주홍색을 머리에 머금은 붓 머리들은 나중에 바다칸타타 퍼포먼스를 되새김질 할 기념이 될 듯싶어서였다. 

책의 표지에 채색화를 그리고, 낭독CD를 첨부하자면 이를 든든하게 받쳐줄 수 있는 양장제본이라야 했다. 양장제본에 낭독CD를 첨부하여 320쪽의 책을 제작하려면 일반적인 수필집보다 두 배의 예산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수필집의 책값을 두 배로 올릴 수도 없었다. 결국 만 오천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책값이 결정되었다.    

 
◇ 커피칸타타와의 절묘한 만남

책이 인쇄되고 있는 중에 롯데칠성음료에서 칸타타커피가 출시되었고, TV에서는 유명 연예인이 등장한 칸타타 CM이 뜨고 있었다. 칸타타 마케팅 팀에 전화를 넣어 바다칸타타라는 책의 성격과 퍼포먼스계획 등을 설명하고 협찬을 타진했다.

수필 한 편을 읽는 시간에 커피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다는 커피와 수필의 멋진 궁합을 제시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두 칸타타의 궁합이 잘 맞아 돌아갔다. 롯데에서는 처음 요구한 500캔(퍼포먼스로 책 500부를 계획했었음)보다 세배가 되는 1,500캔을 보내왔다. 롯데의 이 같은 협찬은 결국 기증도서의 수량을 500부에서 1,004권으로 불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중원제지에서는 이 책의 출간 의도에 동참하고자 인쇄용지를 무상으로 보내왔다. 좋은 일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일까, 책의 기획에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낸 수필가 이남희 선생이 고운 목소리로 낭독에 참여했다.

이남희 선생은 이 낭독 참여를 통해 수필 낭독의 진가를 발휘, 성우 김수영님의 고운 목소리와 함께 이 CD는 호평을 받아 2쇄에서는 시낭송가인 수필가 김순와 선생이 참여하였고, 저자도 세편을 육성녹음에 참여, 모두 18편의 작품이 낭독되어 CD에 수록되었다. 이후 이남희 수필가는 수필낭독의 독보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계기가 된다. 

 
▲ 책의 기획에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낸 수필가 이남희 선생이 고운 목소리로 낭독에 참여했다.

 
◇ 기네스북보다 더 중요한 것

출간이 된 책은 소위 민둥머리처럼 표지가 흰 백지로 납품되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점에 배포될 1,000권의 책 표지를 우선 그려야 했다. 출판기념회가 있기 일주일 전에 추석 연휴가 있었다. 천금 같은 시간, 연휴도 6일이나 되었다. 그 엿새 동안 나는 표지그림 1,200권을 그려냈다.

거실은 온통 책과 물감으로 가득했고, 추석 명절 대비는 물 건너갔다. 처음 계획대로 표지에 9개의 바다색 원형을 그려나갔다. 그러나 9개보다는 3개를 그려놓을 때 훨씬 그림이 좋았고, 제목서체와의 조화도 더 잘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3개의 원형이 꿈의 응어리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탄생하게 되었다. 

표지를 그려나갈 때 200권이 넘어서자 회의가 밀려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원형의 이미지는 마치 기계에서 뽑아내듯 속도가 붙었고, 기계가 아닌 나로서는 그런 작업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짜증이 나니 그림이 안 되었다. 나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두 가지의 칼라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새롭게 감정조절을 할 수 있었다. 표지 그림을 그릴 때의 이런 느낌은 퍼포먼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여건이 나를 신나게 만들면 그림이 잘 되었고, 조금이라도 심기가 불편하면 동그란 원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기형으로 나오곤 했다. 그것은 책의 표지그림이 다 같아 보여도 각기 기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같은 그림은 한 점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독자들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표지그림의 책을 갖게 된다는 논리에 합리성을 부여했다. 

나를 돕는 스텝 중에서 나의 작업이 기네스감이라고 여겨 한국기네스협회, 국제 기네스협회에 질의 한 결과 기네스에 등재될 사안이라는 회답을 받았다. 그러나 심사를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심사비를 소외계층에게 한 권이라도 더 주는 일에 사용하기로 했다.

 
◇ 어휴! 고정관념 즐거운 해프닝

낭독 CD에 표지를 그린다나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특강 및 퍼포먼스를 요청해왔다. 내 후배가 되는 그 교장과 인사를 나누고 책을 한 권 건네면서 표지가 일일이 그린 것이라고 설명을 했더니 대단한 작업을 했다고 놀라워했다. 면담이 끝나 일어서려는데 교장이 “선배님, 이 책 이상합니다. 표지와 겉 종이가 붙어서 잘 안 떨어지네요.” 했다.

책의 표지를 한 권 한 권 그려서 출간했고, 퍼포먼스를 통해서 일일이 그려준다는 말을 했음에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건성으로 들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표지를 손으로 문지르며 이것을 직접 그렸다고 새삼 설명해 주면서 물감이 마르기 전에 겉종이를 덮어서 붙어버린 부분을 떼어냈다. 교장은 그때서야 직접 그린 그림을 인쇄한 것으로 들었다며 다시 놀라워했다. 

출판기념회에 왔던 문인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낭독 CD를 들어보았냐고 묻는 내 질문에 그녀는 정색을 하며 자기는 CD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책 뒤에 붙어서 출간된 책인데 아직 책도 열어보지 않았다고 스스로 고백한 결과이었다. 글은 문인도 읽지 않는 것인가. 좋은 글을 쓰려면 남의 글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 언론의 호평 ‘출판의 진화’

서울의 중심인 명동 로열호텔에서 있은 출판기념식에는 ‘저자가 14세 때 쓴, 누렇게 변색된 원고지 2,000매’가 등장, 축하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시간관계로 이날 선 보이려던 표지 그리기 퍼포먼스는 보여줄 수 없었지만 내가 찾아가서 전달하려고 했던 서울 시각장애인협회에서 직접 참석해 낭독CD 200장과 책 20권이 전달됨으로서 공식적으로 퍼포먼스에 시동이 걸렸다. 중앙일보는 이 출판기념식에 의미를 부여하고 ‘출판기념회의 진화’라고 규정한 기사를 실었다(07년 10월 12일자).

 
■ 바다칸타타 대장정  항해일지 ■


◇ 퍼포먼스 서곡을 알리다

▲ 많은 독자들과 만났지만 특히 한 젊은 임산부가 기억에 남는다.
시동이 걸린 퍼포먼스는 KBO(한국프로야구협회)의 협조아래 잠실구장에서 07년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 앞서 진행되었다. 이 퍼포먼스는 불특정 독자들을 대상으로 독자를 찾아가는 퍼포먼스의 일환이었으며, 이틀 동안 많은 독자들과 만났지만 특히 한 젊은 임산부가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임신한 아이가 아들이고 그 이름까지 지었다며 태어날 아들 이름으로 사인해 주길 바랐다. 나는 표지그림으로 태양을 큼직하게 그려주었다. 그녀의 행복해 하던 모습은 기억에 또렷하다. 그녀는 아이에게 큰 보물을 안겨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서울숲 가을 페스티벌에 ‘바다칸타타 작가의 날’이 이틀간 열렸고, 본격적인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고아네스라는 독자는 꽃다발을 준비해 와서 안겨주었다. 표지를 직접 그려주는 작가에게 독자들은 흥미로워했고,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후 중, 고등학교와 재활복지대학 등에서 퍼포먼스를 가졌고, 나이층이 내려갈수록 반응은 훨씬 더 열광적이었다. 

 
◇ 소외 장애우들에 각별한 관심

경기지역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협회를 통하여 낭독CD가 전달되었다. 서울 시각장애인협회에서는 저자에게 점자명함을 만들어주었고, 점자 뉴스를 통해 바다칸타타를 알렸다. 이 후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퍼포먼스 스케줄이 잡혔다.   

함박눈이 많이 오는 날, 중증장애자들의 요양소인 양주 요셉의 집을 찾아 나섰다. 그곳에는 천사들만이 살고 있었다. 장애인들은 갑자기 내리는 큰 눈 때문에 우리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며 초조하게 기다렸다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맑은 눈망울에는 세상의 오욕이란 보이지 않았다. 작가를 만나고, 그 작가의 책을 받고, 본인 이름의 사인을 받고, 책 표지에 그림까지 그려주다니......, 낭독 시디에서는 뭉클한 감동이 울려 퍼지는 속에 장애인들은 자기만의 책을 부둥켜안고 좋아라했다.

롯데에서 제공한 칸타타커피도 천사들의 갈증을 덜어주는데 한 몫을 했다. 그들에게 나는 눈꽃 피는 날 하늘이 보내주는 천사였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들보다도 더 아름다운 천사들은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이었다. 

서울 경기지역의 퍼포먼스는 20회를 넘기면서 어느덧 6개월로 접어들었다. 아직 갈 곳은 많고 많다. 어느 날, 요셉의 집을 재방문하도록 일정이 잡혔다. 묘하게도 그날도 함박눈이 내렸다. 우리 스텝들은 하얀 세상이면 나타나는 사람들이었을까. 

낮 익은 장애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나를 맞았다. 몇몇은 내가 재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빨래를 하고 치장을 하더라했다. 그들은 나를 무척 반겼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내 나이또래의 중증 장애인은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아들을 불러 세 번 읽은 선생님의 책을 주어 보냈노라고 했다.

명문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나온 한 장애인은 신혼 초에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남편을 여의고 지금까지 30여년 세월을 이 시설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나이가 내 나이였고, 따져보니 같은 학번이었다. 장애인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시설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왜 나를 그들이 특별히 반겨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책이 말을 할 때 기뻐 눈물 흘리다.

그들에게는 공동의 것들만 있었다. 자기 것이 없었다. 모 기관에서 왔다며 위문품 던져놓고 가버리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이 도리어 상처를 입는다는 말뜻을 헤아릴 수가 있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고, 그 사람을 위해 사인을 해 주었고, 이것은 당신 것이라며 직접 손에 책을 안겨주었다. 그들에게는 그 행위가 큰 위로였던 것이 아닐까. 

경기도의 혜성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책을 받는 사람들 중 책을 이해하지 못할 성 부른 장애인이 있어 복지사에게 그런 뜻을 말했더니 그 말을 알아듣고는 눈물을 흘리는 장애인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어께를 다독이며 위로의 말과 함께 정성껏 그림을 그려서 책을 건넸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어 보이며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책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전달하자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에게 책은 이미 책 이상의 의미였다. 

가평의 작은 예수회에서는 퍼포먼스를 마치고 짐을 챙겨 차에 오른 후 시동을 걸고 있는데 한 장애인이 건물에서 달려 나오며 차를 세우라고 손을 흔들어댔다. 윈도우를 열자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세장의 그림을 부끄러운 표정으로 전해주는 것이었다.

하트, 십자가가 그림, ‘작가님 사랑해요’라는 서툰 글씨가 있는 그림 편지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날 찾아간 세 사람에게 주려고 그림편지 세장을 만들어 가지고 달려온 것이었다.


◇ 4월 16일 서울숲에서 너무 특별한 퍼포먼스

전맹(全盲) 장애우들에게 읽을 책을 주고, 표지의 색을 선택하게 하여 그려주었다. 맹인에게 책을 주다니.... 그러나 그들처럼 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들처럼 색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래서 전맹 장애우들에게 직접 색을 선택하게 하여 그려주고 그들의 손끝 감촉으로 색을 전해 주었다. 볼 수 없어서 읽을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도무미가 있다. 그들 이름으로 작가가 사인을 해 드렸다. 

 
◇ 바다칸타타! 독도를 수호하다

일본의 거듭되는 독도관련발언으로 독도가 다시 국제무대의 관심을 받는다. 독도는 우리 땅 이라고 들 한다. 틀린 말이다. 이 말은 일본인들의 말 술수에 놀아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니 우리도 우리 땅이라고 우기는 꼴이 된다. 러시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 당연히 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 아니라 독도는 내 사랑이다. 우리의 자랑이다. 독도는 우리의 자랑이라 함이 어떨지... 아무튼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함은 옳은 표현이 아니다.

광복절에 독도를 다녀왔다. 물살이 거세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독도에는 접안이 허용되었다. 광복절 행사 등으로 독도 경비대원들과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 책 30권만 전달하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끝내야 해서 많이 아쉬웠다.

서울에서 묵호로, 묵호에서 울릉도로, 다시 독도까지 10시간을 넘게 바다 건너 산 넘어 무거운 책을 가져왔는데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도 이외에도 울릉도의 빼어난, 신비로운 경관을 보고 떠나기 때문에 아쉬움은 많이 기실 수 있었다. 강풍으로 뱃길이 막혀 하루를 더 묶는 바람에 울릉도를 더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 바다칸타타! 독도를 수호하다

◇ 비무장지대의 '통일기원 천불제'

제 31차 퍼포먼스는 작품 중에 나오는 비무장지대에 직접 찾아가 ‘비무장지대의 천불’이라는 통일 기원제를 올림으로써 시작되었다. 전방 사단과 사전에 연락을 취하여 내가 35년 전 철책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지역의 오피에서 장병들과 함께하는 행사였다. 아침부터 강한 바람과 비가 쏟아져 내렸다. 일반 차량을 군용으로 바꿔 타고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진입한 후 행사지역에 도착하니 이미 장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35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소대를 지휘하던 소대장이었다.” 오프닝은 영성 춤을 추는 양진성님의 불꽃 춤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격렬했던 금화지구 전투에서 산화한 선배 영령들을 위한 진혼의 춤이 불꽃으로 살아났고, 전민정 시인의 시 낭송, 바다칸타타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낭독 수필 ‘비무장지대의 천불’이 울려 퍼지면서 참석했던 모든 장병들과 스텝들이 퍼포먼스는 막을 내렸다. 이날 동행 취재한 국방뉴스 취재팀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리고 행사를 도와준 정훈관계 여러 장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 비무장지대의 '통일기원 천불제'

 
◇ 연신 천사들을 만날 수 있다니...

불특정 독자와 문화소외계층을 찾아 행하는 이 일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기껏 몇 번 하고 말 것이라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고, 내 그림을 받고, 내 글을 읽고, 낭독수필을 들은 사람들에게 나는 약속을 했다. 이 일을 끝까지 하겠다고. 물론 그 끝은 여건이 따라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내가 남들보다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내 힘이 닿는 한 이 일을 지속할 생각이다. 그것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일뿐 아니라 사실은 그 일을 하는 가운데서 내가 더 많은 것을 얻고, 배우기 때문이다.

세상에 천사를 만나는 일, 천사들과 사귀는 일 보다 더 신나고 즐거운 일이 있을까. 하찮은 내 책으로, 하찮은 내 필력으로 인하여 천사들을 만날 수 있다니......, 나는 소외계층의 그분들에게 도리어 감사할 따름이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9/01/06 [07:08]  최종편집: ⓒ 전남방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