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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천년의 이야기 6>
같은 것 다른 생각
 
양인숙 아동문학박사   기사입력  2017/06/14 [09:58]

 

                                 같은 것 다른 생각

                                                                양인숙(아동문학박사)

 

▲   노루목 적벽   © 전남방송

 


바위보다 더 든든한 것이 있을까?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온 몸을 적시고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대로 덮으며 녹이며 버티며 인내하는 것이 바위다. 이런 바위의 사연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다고 마냥 막막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대면을 하고 들어보자. 길을 나섰다.


가뭄이 한창, 전국에서 물이 부족하여 이대로라면 제한급수를 해야 한다고 하는 실정이다. 먼저 동복에 있는 독상리 석등을 찾아갔다. 석등을 보고자 벌써 일곱 번째 방문이다. 안에 석등은 그대로인데 대문이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대문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석등의 설명에 의하면 동복에 살던 시중(요즘의 국무총리) 오대승이란 분이 자연 암반 위에 48개의 구멍을 파서 구멍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세워 불을 켜고 기도했다고 전한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48개의 불을 켜고 밤마다 하늘에 예를 올렸는데,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였다고 하는 내용이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 동복조에서 나타나고 1670년(현종 11년)에 세워둔 ‘石燈記’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음을 볼 수 있다.

 

▲ 전라남도 관광해설사협회에 등록돼 있는 사진     ©전남방송
▲ 홍살문 안에 석등이 있다.     ©전남방송

 

그러나 오늘도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담 너머로 석등을 볼 뿐 안에 들어 갈 수는 없었다.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 봤지만 동복오씨 집안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면에서는 문을 열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무리 아쉬워도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는 일. 물염정으로 향했다.

 

적벽은 한국10대 비경으로 꼽히던 곳이고 이곳 동복은 지금의 군단위에 해당하는 큰 고을이었다. 동복면소제지에서 물염정으로 가는 길은 2차선 좁은 길이다.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굽이굽이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창랑적벽을 만날 수 있다.

 

와! 가뭄이 내게 준 선물, 물에 잠겼던 절벽들이 나보란 듯 펼쳐져 있다.

 

▲ 창랑적벽     © 전남방송

 

절벽을 수면 아래로 감추고 있던 물은 수많은 생명의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나가고 절벽이 드러나 있었다. 가뭄이 아니었으면 볼 수 없는 비경,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갔던 일행들이 놓고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나야 뭐 ‘갈 테면 가라지.’ 왕 베짱이다. 저 물가에 내려가고 싶었지만 철망이 가로막아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두고 물염정에 도착을 했다. 발아래 물을 품고 있어서일까? 물염정 나무들은 아직 성성했다.

   

▲ 각도를 달리 본 물염적벽     ©전남방송
▲ 물염정     © 전남방송

 

 

                                                       
배룡나무 기둥을 잡고 올라 바람을 마주하니 ‘속세에 물들지 않’을 만하다. 물염은 조선 명종 시대 문과에 급제한 송정순의 호란다. 중종13년 문과에 급제한 물염공은 손이 없어 외손인 나무송(羅茂松), 나무춘(羅茂春) 형제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었다 한다.


정자 내부에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들인 김인후(金麟厚)·이식(李栻)·권필(權韠)·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이 남긴 시문(詩文) 등 20개가 넘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중 두 개의 시문은 한글번역이 되어 있어 읽기 좋지만 나머지는 그저 바라보며 이 곳에 오셨던 분들의 이름 정도 알아볼 수 있을 뿐.


외손들도 떠나고 지금은 마치 삿갓 김병연의 유적지로 착각할 정도였다. 물염정자 아래 물염적벽을 바라볼라치면 김삿갓의 시비와 동상이 호화롭게 서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정자에 서서 환담을 나누다가 무슨 소리가 나서 내려가 보니 흑염소가족이 숲 속에 놀고 있었다. 방목한 상태의 염소들 중 아기염소가 있었다. 어쩌면 아기들은 사람이나 짐슴을 가리지 않고 그리 이쁜지.

 

적벽은 화순 이서면 약 7km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들을 화순적벽이라 하는데  대표적으로 노루목적벽, 물염적벽, 창량적벽, 보산적벽으로 불리운다. 노루목적벽은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그 동안은 사람의 통행을 막았었다. 그러나 30여년 만인 2014년 10월 23일부터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이 상생의 공동발전을 위한 사업으로 한시적 개방을 하고 있다.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노루목적벽을 만날 수가 없다. 보산적벽은 망향정이 서 있는 아래쪽 절벽 그러니까 보산리 마을 앞에 있었기 때문에 보산적벽으로 불리운다.

▲ 보산적벽 2017년 4월 13일     © 전남방송


망향정을 들어간다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아쉬운 것은 그 뿐 아니었다. 물염정에서 야사리 쪽으로 나오다보니 절벽이 또 하나 있었다. 절벽 아래로는 사람들이 건너다녔을 듯한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가 찍은 사진, 사람들이 건너다니던 다리가 보인다.

▲ 가뭄이 준 선물     © 전남방송

 

▲     © 전남방송
▲     ©전남방송

 

노목적벽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요즘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노루목 적벽을 마주하고 서면 ‘적벽동천’이라 명명하였다는 신재선생을 잊을 수가 없다. 신재선생이 기묘사화에 연루, 유배지인 적벽에 도착하던 1519년 12월 20일, 화순 땅 능주에서는 정암선생이 사약을 받았다.


신재선생의 마음이 참담하였으리라. 광양 백운산 아래에서 태어난 선생이 10년을 작정하고 공부를 하다가 공부에 의미가 없다하고 생각하여 8년 만에 바위굴을 나오며 읊었다는 시(?)는 앞날이 암울한 지금의 청소년에게도 힘이 되지 않을까?

 

 “泰山壓後天無北(태산압후천무북): 태산이 뒤를 누르니 북쪽 하늘이 없다”

그러고는 그 다음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초립동이가 나타나더니

“大海當前地失南(대해당전지실남) 대해를 앞에 당하니 남쪽 땅이 없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 초계 최씨 자료집에서 발췌


무슨 말일까? 내 맘대로 해석을 해 본다. ‘태산 같은 미래가 나를 억누르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여 공부를 그만 두고 나왔지만 초립동이가 대꾸한다. ‘넓고 넓은 미래가 있는데 그만 두면 어찌하는가? 나를 갈고 닦는 길만이 바다 같은 넓은 미래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을 했을 듯. 다시 들어가 80여권이나 되는 ‘주자강목’을 2년 동안 수천 번 읽고 외웠다고 전한다.(신재 최산두를 검색하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옴) 


신재선생이 암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달천 위의 절벽을 보고 중국의 ‘적벽’ 보다 아름답다고 해서 ‘적벽동천’이라 이름 하였다고도 하고 임억령이 이름 지었다고도 하는데. 바위는 누가 이름 하였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노루목적벽에 붉은 글씨로 ‘赤壁同天’을 이름표처럼 가슴에 달고 있다. 그러나 이를 볼 수 있는 눈은 많지 않다. 물 건너 멀리 건너편 망향정에서 바라보면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노루목적벽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글이 있다.

 “무등산에서 흘러내린 영신천과 물염에서 내려오는 창량천이 합쳐 이루어진 절경이 적벽이다. 적벽은 옹성산의 서쪽 자락에 높이 65미터에 너비 300미터의 벼랑을 이루면서 달천을 막아 푸른 호수를 만든다. 수직의 결이 아니라 판암이 시루떡처럼 한 장씩 차곡차곡 쌓이면서 절벽을 만드는데 붉은 빛깔을 띤 바위에 색색의 이끼가 덮여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절경에 취해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가며 시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전국을 유랑하다 적벽에 반해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는 김삿갓의 적벽팔경을 노래한 4언절구가 적벽의 아름다움을 잘 설명해준다.

 

赤壁落火 (적벽낙화) 적벽 위에서 떨어지는 불꽃놀이
寒山暮鐘 (한산모종) 한산사의 저녁종소리
仙臺觀射 (선대관사) 선대에서 보는 활쏘기놀이
浮岩觀魚 (부암관어) 부암에서 물고기떼
姑蘇淸風 (고소청풍) 고소대의 맑은 바람
金沙落雁 (금사낙안) 금모래위에 내리는 기러기 떼
鶴灘歸帆 (학탄귀범) 학탄에 돌아오는 돛단배
雪堂明月 (설당명월) 눈덮인 집에서 보는 밝은 달

 

한산사가 있던 곳은 어디쯤이었을까? 노루목 적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래를 보면 정자가 또 하나 있다. 망미정이다. 적송 정지준 장군이 병자호란 때 나라의 위태함을 걱정, 의병을 이끌고 올라가던 중 선조가 남한산성에서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탄식하며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며 지낸 정자다. 義를 품었지만 펼치지 못하고 홀로 적벽에 머물며 삭히는 모습이 망미정을 찾는 이의 마음에 스며든다.
망미정으로 내려가는 곳에 탑이 하나 외로이 서 있다. 무자탑이다. 혹자는 유마사의 전설 속 보안보살탑이라고도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 글자 하나 각해져 있지 않은 무자탑     © 전남방송

 
탑은 그저 그렇게 맑은 하늘 속에 사람의 발길마저 금한 망향정 아래 서 있다.
망미정에서 바라보는 노루목적벽은 더 웅장하다.
자연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키운다고 한다. 저 웅장한 노루목적벽을 바라보며 웅대한 꿈을 키웠지만 펼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이 지금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아쉽게 한다.
늘 그 자리 같은 것을 바라보지만 다른 생각을 갖게 하는 힘을 가졌다. 절벽은, 바위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와 사연을 품고 오늘도 의연하게 찾는 이를 맞는다.


옹성산 위에서 바라본 동복호 망향정이 한 점으로 보인다

▲ 옹성산 위에서 바라본 동복호 망향정이 한 점으로 보인다.     © 전남방송

 

같지만은 않은 나날,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서 같은 것이지만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웃음을 갖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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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4 [09:58]  최종편집: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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