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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천년의 이야기 5>
 
양인숙(아동문학박사)   기사입력  2017/06/08 [08:31]

 

같은 것 다른 생각

양인숙(아동문학박사)

 

 

노루목 적벽   © 전남방송

 

바위보다 더 든든한 것이 있을까?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온 몸을 적시고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대로 덮으며 녹이며 버티며 인내하는 것이 바위다. 이런 바위의 사연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다고 마냥 막막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대면을 하고 들어보자. 길을 나섰다.

가뭄이 한창, 전국에서 물이 부족하여 이대로라면 제한급수를 해야 한다고 하는 실정이다. 먼저 동복에 있는 독상리 석등을 찾아갔다. 석등을 보고자 벌써 일곱 번째 방문이다. 안에 석등은 그대로인데 대문이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대문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석등의 설명에 의하면 동복에 살던 시중(요즘의 국무총리) 오대승이란 분이 자연 암반 위에 48개의 구멍을 파서 구멍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세워 불을 켜고 기도했다고 전한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48개의 불을 켜고 밤마다 하늘에 예를 올렸는데,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였다고 하는 내용이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 동복조에서 나타나고 1670(현종 11)에 세워둔 石燈記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음을 볼 수 있다.

 

▲ 전라남도관광 해설사 협회에              홍살문안에 석등이 있다.

등록 되어 있는 사진    © 전남방송

 

그러나 오늘도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담 너머로 석등을 볼 뿐 안에 들어 갈 수는 없었다.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 봤지만 동복오씨 집안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면에서는 문을 열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무리 아쉬워도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는 일. 물염정으로 향했다.

적벽은 한국10대 비경으로 꼽히던 곳이고 이곳 동복은 지금의 군단위에 해당하는 큰 고을이었다. 동복면소제지에서 물염정으로 가는 길은 2차선 좁은 길이다.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굽이굽이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창랑적벽을 만날 수 있다.

! 가뭄이 내게 준 선물, 물에 잠겼던 절벽들이 나보란 듯 펼쳐져 있다.

▲   창랑적벽  © 전남방송

 

절벽을 수면 아래로 감추고 있던 물은 수많은 생명의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나가고 절벽이 드러나 있었다. 가뭄이 아니었으면 볼 수 없는 비경,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갔던 일행들이 놓고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나야 뭐 갈 테면 가라지.’ 왕 베짱이다. 저 물가에 내려가고 싶었지만 철망이 가로막아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두고 물염정에 도착을 했다. 발아래 물을 품고 있어서일까? 물염정 나무들은 아직 성성했다.

 

▲     © 전남방송

 

 

배룡나무 기둥을 잡고 올라 바람을 마주하니 ‘속세에 물들지 않’을 만하다. 물염은 조선 명종 시대 문과에 급제한 송정순의 호란다. 중종13년 문과에 급제한 물염공은 손이 없어 외손인 나무송(羅茂松), 나무춘(羅茂春) 형제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었다 한다.
정자 내부에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들인 김인후(金麟厚)·이식(李栻)·권필(權韠)·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이 남긴 시문(詩文) 등 20개가 넘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중 두 개의 시문은 한글번역이 되어 있어 읽기 좋지만 나머지는 그저 바라보며 이 곳에 오셨던 분들의 이름 정도 알아볼 수 있을 뿐.
외손들도 떠나고 지금은 마치 삿갓 김병연의 유적지로 착각할 정도였다. 물염정자 아래 물염적벽을 바라볼라치면 김삿갓의 시비와 동상이 호화롭게 서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정자에 서서 환담을 나누다가 무슨 소리가 나서 내려가 보니 흑염소가족이 숲 속에 놀고 있었다. 방목한 상태의 염소들 중 아기염소가 있었다. 어쩌면 아기들은 사람이나 짐슴을 가리지 않고 그리 이쁜지.
적벽은 화순 이서면 약 7km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들을 화순적벽이라 하는데  대표적으로 노루목적벽, 물염적벽, 창량적벽, 보산적벽으로 불리운다.

노루목적벽은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그 동안은 사람의 통행을 막았었다. 그러나 30여년 만인 2014년 10월 23일부터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이 상생의 공동발전을 위한 사업으로 한시적 개방을 하고 있다.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노루목적벽을 만날 수가 없다. 보산적벽은 망향정이 서 있는 아래쪽 절벽 그러니까 보산리 마을 앞에 있었기 때문에 보산적벽으로 불리운다.

▲    보산적벽 2017년 4월 13일  © 전남방송  

 

망향정을 들어간다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아쉬운 것은 그 뿐 아니었다. 물염정에서 야사리 쪽으로 나오다보니 절벽이 또 하나 있었다. 절벽 아래로는 사람들이 건너다녔을 듯한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가 찍은 사진, 사람들이 건너다니던 다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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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08 [08:31]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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