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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천년의 이야기 5>
 
양인숙 아동문학박사   기사입력  2017/05/14 [10:12]

  

씨앗을 심어야 새싹이 나오듯

 

양인숙(아동문학박사)

 

 

 

▲     © 전남방송
                                                                  각시바위

 

 

 

고인돌

 

머언 옛날

멋진 할아버지 한 분 살았대요

고을에 어려운 일 생기면 앞장 서 해결해주고

외로운 사람이 찾아오면 따듯한 마음으로 감싸주던

고을 사람들 누구나 할아버지를 좋아하였대요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 몸 벗어 놓고 어디론가 떠나버렸어요

마을 사람들은 울며 기다렸지만

할아버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은 할아버지의 몸을

사람들은 땅에 묻기로 했어요

 

씨앗을 심으면 새싹이 나오듯

할아버지 몸을 묻으면

그 마음이 새싹처럼 솟아날 줄 알았나 봐요.

 

할아버진 새싹으로 터 오르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크고 든든한 바위를 끌어다

할아버지 집을 만들었어요.

 

할아버지 바라보듯 바위집 바라보며

사람들은 차츰 알게 되었답니다.

작은 정성, 약한 힘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이제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은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숲 속에 동그마니 남아 있어요

할아버지를 그리던 마음들

지금도 고인돌 감싸고

진달래꽃으로 원추리 꽃으로

!

!

피어나고 있어요.

<양인숙 동시집 웃긴다 웃겨 애기똥풀중에서>

 

고인돌을 오가며 느낀 것을 적었던 동시다.

그 옛날 문자가 없던 시절에 살던 사람들도 생각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표시를 해 두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늘 잊으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인가?

오늘 일을 가장 오래도록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참 고민을 많이 하다가 찾은 것이 바위에 새기는 일이지 않았을까?

바위는 그렇게 상처를 내가며 새겨진 세월 속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품고 풍우를 이겨내고 있다.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지동마을에서 보성재를 넘어 도곡으로 가는 길은 우리들 어려서는 성묫길이었다. 아침 차례를 모시고 집을 나서 도곡면 월곡리 산소에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주로 추석 때 가는데 그때는 마침 포리똥(?)이 익어서 달작지근하게 먹을 만 했다. 가면서는 갈 길이 바쁘니 서둘러 갔다가 오는 길에는 심심할 때쯤 서 있는 그 열매, 성냥꼬투리만 하던 그 열매를, 지금은 모양조차 설명할 길이 없지만 입이 텁텁하도록 따먹고 춘양 집에 도착을 하면 해가 뉘엿뉘엿했다.

그 때는 고인돌이라는 것도 모르고 넓적한 바위에 앉아 쉬기도 하고 혹은 지친 다리를 펴고 누워서 하늘을 보면 어찌나 맑던지. 하늘에 나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더랬다.

그렇게 산 속에 묻혀 있던 바위덩이들이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창, 강화 고인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화순 고인돌은 18년여 동안 다듬고 가꾸어 이제는 무덤이라기보다는 친근하게 함께 할 수 있는 공원 같은 모습이 되었다.

고개만 넘어도 하루 해가 갔던 예전과는 달리 광주에서 출발, 30여분만 가면 시간 여행을 하듯 고인돌 입구에 닿는다.

도곡면 효산리에서 들어가는 입구부터 커다란 모형으로 고인돌의 지역임을 알리고 있다. 고양이에 얽힌 전설이 있는 괴바위, 관찰사가 지나가다가 멈추어 관청 일을 보았다는 관청바위, 이 관청바위에는 우리 집안의 슬픈 역사도 새겨져 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어쩌다 관청바위에 갔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야기 해 주던 어머니의 말씀, 그 이야기는 그때 듣지 않았다면 세월 속에 묻히고 말 것이었다.

관청바위로 오르는 오른쪽에는 달바위가 둥글게 자리 잡고 있다. 달바위를 지나 저수지를 지나 올라가면 왼쪽 산비탈로 거대한 바위절벽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절벽이 아니라 비교적 반듯하게 잘라진 바위덩이들이다. 고인돌을 조성하기 위해 바위를 떼어서 차곡차곡 쟁여둔 모습이다.

최근에 조성해둔 정자에 올라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으련만, 뭐가 그리 바쁜지 그냥 보고만 다닐 뿐이다.

보성재를 넘어 춘양 쪽 길을 따라가면 포장길이 나오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산비탈을 채우고 있다. 주변을 잘 다듬어 꽃들이 피어나고 화장실도 설비되어 있어 공원다운 모습을 점차 갖춰가고 있다.

지동마을이 저 아래 보일쯤에 지구상에서 가장 크다는 핑매바위가 나온다.

길이 7m, 무게 290톤이 넘는 거대한 덮개돌로 이루어진 이 바위는 운주사를 하룻밤에 건설하려고 돌을 모을 때 마고할미가 치마폭에 돌을 싸가지고 가다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사미가 내는 닭울음소리에 여기 놓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고, 돌을 던진다는 뜻으로 핑매바위라고 한다는데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거대한 바위무덤으로 봐서 한 나라를 움직이던 임금의 무덤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뿐 바위는 말이 없다.

 

▲     © 전남방송
                                                                 핑매바위

 

핑매바위에서 산비탈을 타고 오르면 각시바위가 나온다. 각시바위는 핑매바위를 떼어내고 남은 흔적이라는 설이 있다. 각시바위로 오르는 길에는 원추리 꽃이 참 예쁘다. 그 원추리꽃을 보고 적었던 동시다.

 

 

 

원추리 초인종

 

띵동! 띵동!

 

와아!

고인돌 옆에 핀

원추리 초인종

 

누르면 열릴 것 같다.

 

바위 밑에 몸 벗어 두고 먼 길 떠났던

할아버지 할머니

움집 안에 둥글게 앉아

도란도란 오붓한 살림살이 모습

 

우리들 피부 몇 겹 아래쯤

도르르 흐르고 있을

청동기 시대

 

실핏줄로 이어져 온

맑고 따순 정,

문 열고 반길 것 같다.

<양인숙 동시집 웃긴다 웃겨 애기똥풀중에서>

 

 

▲     © 전남방송
지금은 원추리 꽃이 필때가 아니다. 대신 노란 씀바귀꽃이 피어 있었다.

.

고인돌이 아니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단지 바위덩이가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고인돌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와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고인돌은 대체적으로 삼천여년 전으로 올라간다. 이 땅에 살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동굴에서 살았다. 어느 생각이 다른 누군가가 불을 이용하게 되었다. 맘모스나 무서운 동물들이 불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점차 동물들을 물리치게 되고 사람들은 차츰 동굴 밖으로 나와 집단생활을 하게 된다.

불을 이용하고 동굴 밖으로 나와 집단을 이루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돌을 갈아서 쓰게 된 시기를 우리는 신석기시대 또는 간석기, 세석기시대라고 한다. 그러니까 구석기와 신석기를 나누는 기준점이 바로 불을 이용하게 된 일이고 농경시대를 열게 된 일이다. 동굴을 찾아 이동하며 살던 사람들이 정착생활을 하고 집단생활을 하게 되고 농사를 짓게 되고 수렵과 사냥으로 먹을 것을 채워야 했던 사람들이 농사를 짓게 되면서 점차 모여 살게 되면서 큰 집단으로 발전하게 된다. 큰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우량의 씨앗을 보관해야 했고 보관기술이 발달하여야 했다. 이 때 만들어지게 된 것이 빗살무늬토기다. 그러니까 빗살무늬토기는 씨앗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점차 잉여농산물을 저장하는 저축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신석기시대를 빗살무늬시대라고 하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모여 살게 되면서 집단이 생겨나고 집단은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하나의 집단만 있다면 결코 전쟁은 없을 것이다. 내 집단의 힘을 키우려다보니 이웃 해 있는 집단을 물리쳐야 내 힘이 커질 수 있기에 사람들은 싸움을 시작한다. 이것이 국가형태가 나타나는 청동기시대이다.

청동기시대는 국가형태가 나타나며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다. 고인돌에서 청동검이며 비파형 동검이 나온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화순고인돌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있는 대곡리에서는 농사를 짓던 분이 헛간의 배수로 작업을 하다가 세형동검 3점과 팔주령 2점을 비롯한 11점의 청동기(靑銅器)를 발견하였다. 이때 발견 된 11점의 유물은 화순 청동기 일괄로 묶여 197232일 국보 제143호로 지정 되어 광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럼 왜 도곡과 춘양 이 부근에 거대한 고인돌이 조성이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지형상 큰물이 지지 않고 비교적 완만한 산 지형을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가형태의 집단이 생겨나자 지도자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팔두령이란 지도자가 들고 다니며 천지의 흐름을 파악하고 군사를 이끌어 지휘하고 영토를 넓혀갔을 것이다.

이렇게 지혜와 용기와 덕망이 있는 지도자 곁에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청동기시대에 나타났던 그 지도자들이 죽게 되면 그 덕망을 기념하기 위해서 지도력에 비례하게 큰 바위로 만들었던 무덤이 지금 우리가 보는 고인돌의 모습이다.

핑매바위를 지나 조금 내려오면 당시의 바위를 떼 내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채석장을 볼 수 있다. 채석장 바위는 감태바위로 불린다. 바위의 크기는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지만 주변의 나무는 무성하게 자라 숲을 이루고 있다. 잔나무들은 베어서 우리가 관람하기에 참 좋다.

내가 천년 속의 감태바위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다람쥐들이 많았다. 한 마리가 바위 밑으로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나를 돌아봐가며 장난을 했다.

 

▲     © 전남방송
                                                           고인돌 파수꾼

 

다람쥐를 보며 생각한다. 나는 천 년 세월 속에 저 다람쥐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 있는 이 자잘한 바위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다. 이곳을 하나의 풀뿌리로라도 이 땅을 지키고 다람쥐와 장난을 치며 여기 이곳을 지키며 사는 것, 이것이 내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에 잠긴다.

 

국가란 한 사람의 지혜와 지도력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풀뿌리부터 이 땅을 이 시대를 사는 사람사람이 마음을 모으지 못하면 그 국가는 멸망하고 만다.

마침 새로운 대통령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이 시점에서 나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이렇게 지금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적어두고, 두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 틀림없으니 오늘 글의 씨앗 하나 심으면 또 다른 글이 싹터오지 않을까? 오늘 나눔의 씨앗하나 심으면 더 큰 나눔의 싹이 트지 않을까? 아니 지혜의 씨앗하나 심으면 더 큰 지혜가 싹트지 않을까?

 

▲     © 전남방송
                     다람쥐가 놀던 고인돌

 

▲     ©전남방송
                                채석장 감태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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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14 [10:12]  최종편집: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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