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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천년의 이야기 4>
바위도 꽃을 피운다
 
양인숙<아동문학박사>   기사입력  2017/04/02 [21:42]

                                    

                   바위도 꽃을 피운다

                            

▲     ©전남방송

 

산이 오르다가 등골이 촉촉해져서야 한 송이 꽃처럼 피어있는 규봉암!

 

화순에 있지만 무등산의 품에 있어 광주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절.

 

규암은 중국황제의 옥쇄를 닮은 바위라는 뜻이란다. 어쩌면 이름 하나 갖게 되는 데도 형상과 시대와 그 사람의 생각이 어우러지는 것은 아닐까?

 

날이 밝고 어두워지고 그 사이를 지수화풍의 움직임이 쉬지 않고 세월과 함께 흘러갔겠지만 천년 아니 수 십 억만년을 그렇게 있었을 것을 알기에 천 년을 이야기하는 것은 규암이 우리를 볼 때는 웃기는 이야기일 것이다.

 

무등산 품에는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 3대 석대가 있다. 규봉암은 광석대를 병풍처럼 두르고 그 안에 꽃술처럼 자라잡고 있다.

 

어느 해, 새해, 첫 해를 맞이하겠다고 1월 1일 새벽 아이들을 데리고 해맞이를 왔다. 상서로운 바위(瑞石)를 보기 위해 오르다, 오르다 지쳐서 입석대 앞에서 멈추어 해가 뜨는 것을 보려고 했지만 눈보라에 가려 해도 보지 못하고 왔던 기억, 규봉암까지 가지 못하고 썼던 짧은 글 하나.

 

규봉암

 

양인숙

 

산이 굽이를 돌아

 

길을 숨기고

 

오솔길 끝나는 곳에

 

꽃처럼 피어 있는 절

 

▲     ©전남방송

 

해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입석대 앞에서 본 마음 속의 해, 눈발 속에 떠오르던 웅장하고 장엄한 해. 어쩌면 그 때 우리는 천년을 변치 않을 꿈을 잉태했고 그 꿈이 있기에 비바람 몰아쳐도 끄떡없이 지금 이겨나가는지도 모르겠다. 글이란 이렇게 다 보지 않아도 규봉에 오른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듯하다.

 

禪心古井澄(선심고정징): 선의 마음은 옛 우물이 맑고

 

世慮春氷泮(세려춘빙반): 세상 생각은 봄 얼음이 풀리네

 

氛埃方未豁(분애방미활): 흐린 기운 아직 열리지 않았으니

 

欲待東方旦(욕대동방단): 동방이 밝아짐 기다리련다.

 

<기대승 [규봉에 이르다] 중 일부 >

 

규봉암에는 은신대, 풍혈대, 설법대 등 십대(十臺)가 있으며 광석대 뒤쪽에는 지진으로 인해 윗부분이 부러진 채 관음존석도 버티고 있단다.

 

규봉암은 의상대사가 바위틈에서 물이 쉴 새 없이 흐르는 것을 보고 절터를 잡았다고 전한다. 아무리 좋은 풍광도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래로 보조국사 지눌과 진각국사 혜심이 여기서 불도를 닦았다고 전한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면 이곳이 불도만 닦았던 곳은 아닌 듯하다. 희미하게나마 바위에 새겨진 이름들, 관찰사 이씨 김씨 신씨 등 바위는 자기 몸에 상처를 내며 새긴 인간들의 이름마저도 그대로 품고 그 마저 자기 몸의 일부인양 상처를 꽃으로 피우고 있다.

 

 

규봉암처럼 좁은 공간을 짜임새 있게 활용한 곳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넓힐 공간이 없는 암석 사이에 아담하게 1995년에 관음전을 새로 세웠고, 최근에 부속건물이 지어졌다. 2016년 여름에 갔을 때는 넓은 바위가 있어 이 바위가 광대석인가 했는데 2017년 3월에 규봉암을 찾았을 때는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었다. 천년동안을 변화되어 오며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처럼 조금 조금 변화되어 가겠지만.

 

그래서 고려 명종 때 시인 김극기(金克己)는 『동국여지승람』 권40에 규봉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규봉사(圭峯寺)

 

김극기

 

이상한 모양이라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라 : 궤상고난명(詭狀苦難名)

 

올라와 보니 만상이 공평하구나등림만상평(登臨萬象平)

 

돌 모양은 비단으로 말아낸 듯 : 석형재금출(石形裁錦出)

 

봉우리 형세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 : 봉세탁규성(峯勢琢圭成)

 

명승을 밟으니 속세의 자취가 막히고승천병진적(勝踐屛塵迹)

 

그윽한 곳에 사니 진리에 대한 정서가 더해지누나유서첨도정(幽棲添道情)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 하당포차망(何當抛此網)

 

가부좌 하고서 무생(無生)을 배우노라 : 부좌학무생(趺坐學無生)

 

 규봉암에 올라보지 않고서는 이 느낌을 받기가 힘들다.

 

고경명도 『유서석록(遊瑞石錄)』을 통해 적어두었는데 글을 읽다보면 실제 그 느낌을 받을 법하다.

 

“북쪽에 있는 청학(靑鶴), 법화대(法華臺) 등은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어 모두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한식경 뒤에 벌벌 떨며 다시 손으로 땅을 짚고 팽조(彭祖)가 샘을 굽어보는 형상으로 조심조심하며 내려와 선생을 모시고 문수암에서 묵었다.” (유서석록 일부)

 

▲     ©전남방송

광석대 남쪽에 통천문처럼 바위기둥 사이에 작은 바위 하나 걸쳐 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사이를 지나가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할 정도로 저 바위가 빠지지 않을까? 했지만 그 바위 역시 천년을 그리 버티고 있지 않는가? 무릇 느낌을 받는 것은 바라보는 그 사람의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문바위 또는 삼존석이라 불린단다.

 

설명에 의하면 서쪽 문지방 같은 돌을 넘어 들어가면 문수암이 있고, 문수암의 동편에는 풍혈대, 서쪽에는 노송이 지키고 있는 장추대, 남쪽으로는 기꺼이 한 몸 감출만 하다는 뜻인지 은신대(隱身臺), 은신대의 서쪽에 바둑판같이 네모반듯한데 옛날 도선 국사가 좌선하던 곳이라고 전한단다.

 

이서 영평마을에서 올라간 우리는 문수암까지는 가지 못했다.

 

규봉암에 도착을 했을 당시에는 우리는 숨이 턱에 차 있었다. 더는 갈 수 없는 상황들이었다. 법당에 삼배하고 나와 숨을 골고 있는데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내 다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사람이 그리웠던 것을까? 관음전에 삼배를 하는 나에게 친근감을 느꼈을까? 숨을 고르고 있는 우리에게 스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셨다.

 

이 멋진 곳에서 맑은 차 한 잔 할 수 있다는 것은 수 많은 행복 속에 얻은 행운이다.

 

▲     ©전남방송

  이미 우리는 저 넓은 들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스라이 옹성산과 노루목적벽, 어머니의 너른 품 같은 이서 들녘을 넉넉하게 바라보면서 마시는 차 한 잔.

 

멀리, 저 멀리 과거로부터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바위는 또 그렇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고 우리는 바람처럼 스쳐갈 것이다. 오늘 이렇게 다녀가는 우리를 보며 바위가 꽃 한 송이 피워줄까? 거침도 없이 차 한 잔에 큰 것을 바래본다.

 

▲     ©전남방송

  삶의 벽이 높지만 늘 들고 나는 문은 있다

▲     ©전남방송

  새로 조성된 약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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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을 변합없이 지킨 관음전

 

▲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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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02 [21:42]  최종편집: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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