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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 소설가의 섬으로 떠나는 완행열차7>
 
소설가 차노휘   기사입력  2017/03/24 [08:45]

 

3월 1일, 삼일절에 일본 대마도로 향했다. 삼일절과 대마도를 이분법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대마도에서 남해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들의 시선으로는 한반도가 늘 갖고 싶었던 대륙의 나라가 아니었을까. 이번 봄, 나는 그곳에 서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고 싶었다.

 

대마도(쓰시마섬) - 생명의 젖가슴

 

▲     ©전남방송

   미우다 해수욕장

 

풍랑이 일었다. 잠잠하던 파도가 거칠어졌다. 거친 파랑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더니 스르르 거대한 뱀이 떠올랐다. 온 몸을 움직여서 헤엄쳐오던 뱀이 모래사장으로 올라왔다. 나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나는 도망가려고 발을 내딛었지만 모래밭에 발이 빠지기만 했다. 숨이 헉헉, 막혔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온통 어둠이었다. 습관적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땀범벅이었다. 베개 주위를 더듬어 스마트폰을 켰다. 11시 59분이었다.

 

한 뼘 빛줄기가 비췄을 때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벽걸이 히터가 아직까지 돌아가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서 리모컨을 찾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후두둑, 하는 소리가 일시에 터졌다. 집이 뿌리 채 뽑히는 것처럼 흔들렸다. 설마 지진?

 

낮에 일본 스루가이드 박이 일본은 지진 발생이 잦아 지하를 만들 수 없어서, 일반 주택 재료는 플라스틱이나 나무를 주로 쓰는데 그것도 조립식처럼 완전히 땅 깊숙이 심지를 박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지진이 발생하면 바닥과 집 건물과는 별개로 움직여서 무사할 수 있지만 방음과 보온이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설명이 머리에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비바람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 건물이 통째로 몸부림치는 듯했다.

 

민숙(民宿 ; 일본의 민박)에 들어왔을 때 방을 보여주던 주인 할아버지가 벽에 걸린 히터 리모컨을 내게 보여주면서 전원 버튼과 온도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히터는 열기로 내 목을 조여 왔다. 저녁 반주로 마신 대마도 보리소주 야마네코도 아직까지 몸속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나는 비바람 소리에 가위에 눌린 듯 가슴 한쪽이 답답했다.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의식만 말똥말똥한 채로 벽 천장을 보며 바깥 날씨에 주의를 기울였다. 잠결에 잠깐 비추었던 이미지처럼 잔잔한 바다는 풍랑이 일 것이다. 그 한가운데로 거대한 뱀이 스르르 올라온다면? 아니, 이런 날 뱀이라니. 전날 갔던 와타즈미 신사가 상상의 주범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     ©전남방송

  바다로 향한 도리이가 있는 와타즈미 신사

 

아주 옛날 옛날에 해신(海神)의 딸과 산신(山神)이 결혼을 했다. 바다신은 산신의 동생이다. 동생 딸과 결혼한 산신은 그녀를 사랑했다.
 
“제발 부탁이니, 제가 출산하는 것을 보지 마옵소서.”
 
서로 지극한 사랑을 주고받던 부부는 아이를 갖게 되고 곧 출산일이 다가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부인은 그녀의 남편인 산신에게 출산하는 장면을 보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거였다. 하지만 남편은 부인 혼자 산통을 겪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볼 수도 없었다. 몰래 지켜보기로 했다. 곧, 놀라운 광경을 접했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부인이 뱀이었던 것이다. 그 뱀이 뱀새끼를 낳고 있었다.

 

출산이 끝난 부인이 다시 사람 형상으로 돌아와서 미소 지었지만 산신은 더 이상 그녀를 예전처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도 낌새를 알아차렸다. 남편이 자신의 본모습을 봤다면, 그래서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해야한다면, 그녀로서는 불행한 일이었다.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녀는 미련 없이 본래 살았던 바다로 들어갔다. 아기와 단둘이 남은 남편은 뒤늦게 아내를 애타게 불렀다. 아기가 옆에서 울고 있었다.
 
“여보, 아기는 어떻게 혼자 키우라는 건가요?”
 
울부짖음이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기보다는 아기를 키우는 부담이라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다시 물 밖으로 나온 부인은 자신의 젖가슴을 떼어서 동굴에 붙여주고는 사라졌다. 아기는 동굴에 붙은 젖가슴에서 나온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세월이 지나 장성한 아이는 일본의 천황이 되었다.
 
쓰시마섬의 와타즈미 신사(和多都美神社)는 일본 천황 어머니를 모신다. 그녀는 뱀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사의 경내로 들어가는 도리이(鳥居, torii)가 독특하게 바다로 나 있다. 이야기에서처럼 그녀가 바다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도리이는 하늘 ‘천(天)’을 변형시킨 것으로 ‘새가 앉는 자리(鳥居)’라는 한자인 ‘도리이’로 새 너머에 있는 것을 신성하게 여긴다하여 속세와 구분 짓는 관문으로 사용된다. 도리이는 흔히 붉은색으로 칠을 하며, 신사의 신성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의 경계를 나타낸다. 또 산이나 바위 같은 곳에 세워 그곳이 신성한 장소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건물을 뿌리 채 뽑아버릴 것 같은 바람이 몸속에서도 이는 것 같아서 몸을 뒤치락거렸다. 아래층에서 조잔조잔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노부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시 깬 것은 4시 30분이었다. 침실 맞은편에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가 사용하는지 소란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잠이 없는 편인데 평소와 달리 30분 먼저 일어난 나는 가부좌를 틀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바깥바람은 잠잠했다.
 
일행이 완전히 바깥으로 빠져나가기를 기다려서 나도 나무 계단을 밟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일층은 부엌과 노부부 침실과 객실 몇 개가 있었다. 신발을 신고 몸을 일으키자 바로 맞은편 벽시계가 한 시간 빨리 맞춰져 있는 게 보였다.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우산을 챙겨들고 바깥문을 밀었다. 
 

▲     ©전남방송

  이즈하라 국제터미널이 보이는 고가도로

 

밤새 비바람이 뿌렸다는 흔적인 듯, 습한 공기가 몰려왔다. 검은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고 그 주위로 가로등이 띄엄띄엄 바다로 빛을 던지고 있었다. 초저녁에 불을 환하게 밝히고 주유 입구 뒤에서 직원 두 명이 꼿꼿이 서 있던 주유소 불은 꺼져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큰 도로로 심호흡을 하며 걸어 내려갔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49.5km, 큐슈에서 147km 떨어져 있다. 울릉도의 열배이며 제주도의 절반 면적이다. 3만 2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덕혜옹주의 흔적이 있다.

 

 

▲     ©전남방송

  가네이시 성터에 있는 덕혜옹주 결혼봉축비

 

1917년 6월 덕혜옹주는 고종의 셋째 딸로 공인되었다. 왕족이 되었지만 오히려 불행이 찾아왔다. 그녀는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끌려가야했다. 일본 황실의 예를 따라 대마도주 아들소다케시(宗武志)와 정략결혼을 했다. 그녀는 정신분열증을 앓았고 자신보다 먼저 딸이 자살하는 비극을 맛보았다. 조국은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정신병원에 머물러야했다. 죽기 몇 년 전에야 주민등록증을 지급받았다. 그녀의 쓸쓸한 죽음만큼이나 쓸쓸한 팔번궁신사 경내에 ‘이왕가종백작가어결혼봉축기념비(李王家 宗伯爵家御結婚奉祝記念碑)라고 적힌 결혼봉축비가 세워져 있었다.

 

왜, 어둠을 품고 있는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비운의 옹주가 생각났을까. 그녀의 생애가 조선의 운명과 닮아서일까. 그녀는 이곳에서 혹, 남해를 바라봤을까.

 

불 꺼진 주유소가 마주보이는 대로에 나오자 비린내가 훅, 끼쳤다. 지나가는 사람도 자동차도 없었다. 물결치는 어둠을 이고 있는 바다는 점점 짙은 블루빛으로 물들어갔다. 가로등과 띄엄띄엄 설치된 자동판매기가 이정표 역할을 했다. 도심지 하천으로 향하는 2차선 도로변을 걸었다. 하천은 이즈하라 중심가라고 할 수 있었다. 버드나무가지가 풍성하게 드리워진 맑은 하천은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밝았다.

 

수신사를 환영하는 듯한 벽화가 그려진 벽 옆으로 난 좁은 층계를 올라 고가도로로 올라갔다. 200미터 앞에 수산시장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기둥이 색깔별대로 바다에 드리워졌다. 고가도로 한쪽에 난 인도로 멀리서 개를 끌고 오는 산책객이 보였다.

 

바람이 거세 옷을 여미며 걸었다. 구름 낀 하늘은 다행히 비를 쏟아내지는 않았다. 개를 끌고 오는 산책객은 내가 지나가도록 멈춰 서서는 가드레일 쪽으로 붙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고가도로 옆 가드레일이 설치된 좁은 길. 조금 걷자 아래로 계단이 있었고 그곳을 따라 내려가자 양옆으로 가로수가 펼쳐진 길이 나타났다. 고가도로 밑이었고 섬 중앙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연못처럼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곳에 소형 배가 정박해 있었다. 간간이 자동차만 지나갈 뿐이었다.

 

▲     © 전남방송

  버드나무가 있는 이즈하라 시내의 하천 도로변

 

이즈하라 중심가는 낮에 걸었던 하천변 도로 양 옆으로 상점들이 이어지고 그 상점 너머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난 상가들과 이자카야 거리 등이 있다면, 하천 도로에서 산등성이로 난 길을 따라서는 주택가가 밀집해 있었다. 산등성이를 삼등분으로 나누어서 좁은 도로가 나 있고 도로를 기점으로 해서 주택이 비탈진 곳에 들어서 있었다. 나는 산등성이에서 맨 위쪽에 나 있는 도로로 올라갔다. 일차선 도로였고 중간 중간에 서로 교차해서 갈 수 있도록 공간이 있었다.

 

제일 먼저 그곳을 선택한 것은 어제 부두에서 시내로 걸어오면서 본 맞은편 풍경 때문이었다. 부두를 내려다보면 비탈진 산자락으로 오밀조밀 세워진 주택 한 가운데에 긴 기와지붕 집이 눈에 띄었다. 흔히 한국에서 보는 기와지붕의 세 배 길이였고 아래로 향한 중간 곡선이 아름다웠다. 비탈진 길을 가로등에 의지하며 올랐다. 가파른 오르막길 입구에 한자로 ‘高陽山 光淸寺(고양산 광청사)’라고 적힌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1872년 광청사에 이즈하라 韓語學所(한어학소)가 개설되었다. 조선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 때문에 대마도는 고대로부터 조선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에는 조선침략의 교두보로서 어학소를 개설해 부산초량왜관에 세워진 초량어학소까지 유학을 보내 조선의 풍습과 언어를 배우게 했다. 대마도 귀족 자녀들이 주요 학생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준비를 했고, 광청사의 한어학소 출신인 國分象太郞(국분상태랑, 고쿠분소타로)이 이토히로부미의 통역비서로 1905년 을사(乙巳勒約) 조약문과 1910년 한일합병 조약문을 초안하고 통역하였다. 그는 조선총독부 인사국장을 거쳐 궁내부 차관까지 진급했다. 조선의 운명을 손아귀에 넣고 주무른 최고권력 실세가 이곳 광청사에서 수학했다는 사실에 심경이 복잡했다.

 

불 밝혀진 현관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올라갔다. 정문은 닫혀있지만 한쪽 옆문이 열려 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들어가도 될까 싶어 왼쪽 담 옆으로 나 있는 길로 들어섰다. 비탈진 곳에 세워진 절이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사찰 뒤, 나무가 흔들리면서 내는 소리가 강풍을 몰고 오는 듯 세찼다. 어둠을 품은 숲이 흔들거렸다.

 

쭉 뻗은 담장을 오른쪽으로 돌아 절 후문으로 향했다. 어둠에 출렁이는 그림자 숲을 숨을 멈추고 보았다. 숲 끝에 거대한 뱀이 우듬지를 돌돌 말고 올라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듯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잠긴 후문에 웅크리고 앉았다. 고개를 들기만 해도 점점 밝아오는 바다가 보였다. 저 바다 끝이 남해와 연결되어 있을까. 웅크리고 있자, 바람이 무릎과 겨드랑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고 수종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박자를 맞추듯 흔들리면서 굉음을 발산했다. 꽁꽁 뭉쳐놓았던 내 마음 속 담즙이 흘러 내렸다. 그 담즙은 어둠을 품고 있는 숲으로 흘러들어갔다.

 

잠깐 바람이 길을 낸 사이로 붉은 빛 매화가 핀 옹기 많은 고목이 보였다. 심한 갈증이 일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어두운 동굴 같은 그곳에 불 밝힌 꽃은 아주 조그마한 젖가슴들이었다. 그 조그마한 젖가슴에 입을 대고 어린애 마냥 빨았다. 그들의 천황신화는 그들의 것일 테지만 지금 내가 입에 문 이 젖가슴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어쩌면 덕혜옹주가 물고 싶었던 그 젖가슴, 남해의 바닷물을 넘어 대륙으로 이어지는 한반도가 근원인 젖가슴. 나는 오래도록 눈을 감았다. 유즙이 흘러나와 내 몸을 적셨다.

 

▲     © 전남방송

  광청사 경내 일부 새벽녘 풍경

 

▲     © 전남방송

  광청사 경내 일부 아침 풍경

대마도(쓰시마섬)는 일본 나가사키 현[長崎縣]에 속한 열도다. 규슈본토 사가 현 가라쓰 시 하도 곶에서 북서쪽으로 82km 떨어져 있으며, 남동쪽에 위치한 이키 섬까지의 거리는 47.5km이고, 한반도와의 거리는 약 49.5km이다. 대마도를여행한 날짜는 2017년 3월 1일부터 2일까지이며, 이 글을 쓰면서 NAVER 쓰시마섬 편과 일본 스루가이드 박태영 선생의 해설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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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4 [08:45]  최종편집: ⓒ 전남방송
 
현아루 17/03/24 [09:51] 수정 삭제  
  울릉도가 그리 작았던가 싶고 대마도가 그리 큰 섬이던가 싶습니다. 차작가님의 기행은 늘 가슴속에 뭔가를 남기는군요. 전남방송은 참 고상한 방송국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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