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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천년의 이야기 2 - 양인숙 아동문학박사>
거북아 거북아
 
양인숙 아동문학박사   기사입력  2017/02/01 [11:25]

 

거북아 거북아

양인숙(아동문학박사)

 

 

 

그림 한 컷으로 남아 있는 개천사, 소풍을 갔었다. 학교에서 걸어서, 걸어서 도착한 곳, 비자나무는 푸른 구름 같고, 그 아래 주먹보다 작은 초가지붕의 대웅전. 지금 생각해도 선명한 그림 한 장, 내 기억 속의 개천사는 그렇게 남아 있다. 잊고 살다가도 ‘비자’라는 말이 나오면 아버지와 함께 떠오르는 개천사.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비자를 꼭 먹게 했다. 구충제를 먹어야 했던 시절이다. 가을이면 개천사 주변에 사는 친구가 주었다며 비자를 한 줌씩 주곤 했다. 나는 비자 향을 참 좋아한다. 아버지의 알싸한 마음 같기도 한 비자. 개천사에 가면 천연기념물 483호 비자나무를 만날 수 있다. 늘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아버지처럼 든든한 비자나무.

 

 

한 알의 추억

양인숙

 

회오리바람

 

나뭇잎 날리는데

 

촛불도 없는

 

그 안에서

 

평안하신지?

 

겨울 빗방울 소리에

 

혹시 날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인가

 

으슬으슬 마음 젖어오는 밤

 

떨떠름한 비자 한 알

 

어두운 맘 밝혀본다.

 

                                                                   ▲ 개천사 비자나무    

 

그리울 때면 개천사 비자나무 사이를 걸어 올라가면 주먹만 하던 초가의 대웅전은 기와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크기는 아담하다. 감나무 은행나무를 지나 오르면 정면에 대웅전이 있고 오른쪽 한 켠에 천불전이 있다. 마당 가운데 우두커니 서면 떠오르는 그림 한 장, 그려보면 같이 떠오르는 낱말, 이색의 ‘영아차’다. 개천사 어디에 차나무가 있었을가? 시간의 어느 계단에 숨겨진 듯 행제스님이 개천사에 계셨던가.

 

스님은 이색에게 ‘영아차’를 보내셨나보다. 오직 글로서만 남아 있는 옛 분들의 정서를 기억하고자 애를 써 본다.

 

 영아차

이색

 

동갑 지기 늙은이라 더욱 친하고

 

영아차 맛은 절로 참따랗구나

 

양쪽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 이노니

 

곧장 고상한 사람 뵙고 싶네.

 

‘겨드랑이 맑은 바람’은 당나라 때 시인 노동(盧同)만 알았던 것이 아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이 맛에 차를 마신다. 행제스님이 개천사에 머물 때 당시에는 차나무도 있었을까? 지금은 오르는 비탈에 한두 그루 보일 뿐 차나무 또한 세월 따라 변화되었는지 안 보였다.

 

                                                                               ▲ 대웅전    

 

흥얼흥얼 다시(茶詩) 한편을 외며 차 맛보다 더 맑은 산 정상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대웅전에 합장하고 천불전 쪽, 왼편 계곡을 따라 오른다.

 

여기는 행정상의 주소는 ‘변천(邊天)’이다. 변천이란 ‘하늘 가’라는 의미다. 일제강점기 지명을 바꾸면서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에서 변천리 ‘하늘 가’ 마을로 바꿔버린 곳이다. 일본도 하늘이 열리는 것을 무서워했던 모양이다.

 

개천사 왼쪽 등성이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개천산 정상에 닿게 된다. 개천산은 천태산의 일부로 산줄기의 북쪽 산봉을 천태산이라 부르고 그보다 남쪽에 있는 산봉을 개천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497.2m 높이로 나주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붓끝처럼 보인다하여 문필봉(文筆峯)이라도 한단다.

 

개천산 - 하늘을 여는 산, 개천사 - 하늘을 여는 절 『조선 지지 자료』에는 중조산(中條山)으로 나오며, 『여지도서』에는 능주목 서이면(西二面)에 개천사라는 지명만 나온다는데.

 

개천사는 규모는 작지만 천년고찰이다. 역사 또한 기록 된 바가 별로 없어 크기로만 본다면 향찰이나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하나씩 남아 있는 바위 흔적들을 보면 퇴락하기 전에는 그 규모가 상당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개천사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선국사가 소창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보다 앞선 헌덕왕 말기 도의선사가 장흥보림사를 창건하고 이어 개천사를 건립하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한때 개천사에는 천불전으로 이름이 나 있어 천불산으로 불린 적도 있었는데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거북바위 곁에 있는 안내문에 의하면 ‘1950년 6·25당시 공비소탕과 함께 절집이 소실되었는데 이때 천불전의 천불상이 불에 녹아 내렸고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니 천불전은 6·25때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풍수지리학에 의하면 개천산은 영산강에서 불어 온 바람이 화순 남평에서 도곡 너른 들을 넘어 능주까지 30리 이상을 타고 들어 온 바람이 개천산에 와서 하늘로 딱 솟아, 높은 인물이 많이 나는 풍치나대형이란다. 그래서일까?

 

당나라 일행선사는 도선국사의 스승이다. 일행선사는 한반도에서 큰 인물이 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도력(道力)으로 명산의 기를 끊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이에 마음이 급해진 도선국사는 천태산 상봉에 제단을 쌓고 철마방아를 만들었다. 주문을 외우며 당나라를 향해 철마방아를 찧었다. 방아를 한번 내려칠 때마다 당나라 황실에서는 큰 인물이 한명씩 죽어나갔다고 한다.

 

어쩌면 도선국사가 거북 등에 철마를 싣고 올라가다가 마음이 급해져서

 

“너는 천천히 오거라. 우선 급하다”

 

거북이는 산 중턱에 놓고 철마를 직접 지고 올라가지 않았을까? 비자나무를 보며 정상을 향해 후적후적 올라가다보면, 거북이를 만날 수 있다. 지금도 거북이는 땀 흘리며 정상을 향해 발을 내 딛고 있다.

 

“거북아, 거북아, 느린 걸음이지만 시간처럼 쉬지 말고 힘들지만 걸어라. 멈추지 않은 것만이 현명하게 사는 길이란다”

 

탑돌이 하듯 거북바위를 한 바퀴 돌며 응원을 한다.

 

                                                                              ▲ 거북바위    

 

천태산 정상에는 도선국사가 당나라와 대적했다는 철마(鐵馬)방아가 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니. 도선국사 떠나고 천태산에 방아는 없어지고 철마가 남았는데 철마의 머리가 향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마를 서로 자기 마을을 향하지 않게 돌려놓았고, 해방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철마가 있었으며 그 앞에 합장할 정도로 신성시 했다고 전한다.

 

또 개천사에는 은적암이라는 암자 터에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지은 수은 최제우선생이 머물렀다고 전한다. 수은선생의 동학성지는 전북 남원에 은적암이 있는데 이름이 같아서인지, 아니면 남원의 은적암은 번잡하여 개천산 은적암을 다시 짓고 왔었는지는 역사적 기록이 명확하지 않아 모르지만 동학의 후예들이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역사야 어찌 되었건, 기록이 있건 없건, 하늘이 열리는 곳, 개천사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기운이 있나보다. 그래서일까? 그냥 편하다.

 

오늘도 머리를 붙여서 다시 기어오르게 했다는 거북바위를 만나기 위해 산을 오른다. 여전히 시냇물이 흐르고 산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한 절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비자를 구충제로 먹이던 아버지도 떠나고, 그림 같은 개천사는 고즈넉하고, 대웅전 곁을 지키던 단풍나무는 할머니처럼 허리 구부러져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비자나무는 여전히 푸른 구름처럼 겨울 산을 채색하고 있다.

 

나무와 바위 자연은 소리 없이 흐르는 시간 속의 우리가 이 땅에 살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거북아, 거북아! 으쌰, 으쌰, 힘내서 어서 정상에 올라라. 정상에 오르는 날, 대명천지 밝은 기운이 한반도를 비추리니”

 

거북이 뒷발 밑에 서서 합장 기도 하고 산 너머로 가는 햇살에 밀려 내려온다.

 

“차 한 잔 하시지요”

 

스님이 부른다. 찻상에 놓인 비자 한 알 입에 넣으니 알싸한 비자 향과 따듯한 차 한 잔에 내 몸과 마음 어느새 푸른 구름이 일어난다. 스님의 차 따르는 움직임에 노동의 ‘칠완다가’를 읊어 본다.

 

칠완다가

 

노 동

 

푸른 구름은 바람을 이끌어 불기를 그치지 않고,

 

흰 꽃은 빛을 띄어 잔의 탕면에 차와 함께 어리네

 

그 첫째 잔은 목구멍과 입술을 적시며

 

둘째 잔은 외로운 번민을 씻어 주네.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찼나니 생각나는 글자가 5천 권이나 되누나.

 

넷째 잔에는 가벼운 평생의 불평은 모두 털구멍으로 흩어지네.

 

다섯 잔째는 기골이 맑아지고,

 

여섯째 잔만에 신선과 통하였다네.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건만, 느끼노니!

 

양쪽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나네.

 

봉래산이 어디메뇨.

 

옥천자야 이 맑은 바람을 타고 돌아가려 하네.

 

                                                                  ▲ 부도로 남은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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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01 [11:25]  최종편집: ⓒ 전남방송
 
호수가있는집 17/02/11 [16:42] 수정 삭제  
  멋진 글 잘 읽어습니다??우리 사는 가까이에 이야기가 있는 곳이 있으면서 모르고 지내다니 앞으로 열씸 둘러보며 살아야 될 듯요??
향우 17/02/12 [17:43] 수정 삭제  
  깊은 사색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비자 한알에 큰산 만큼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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