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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천년의 이야기>
차 꽃으로 이어온 천년
 
아동문학작가 양인숙   기사입력  2017/01/03 [09:18]

 

차 꽃으로 이어온 천년

 

                                                                  양인숙(아동문학작가)

  

▲     © 전남방송

2017년 정유년, 계당산 일출

  

덩!

 

쌍봉사 종소리가 ‘쌍산의 소’ 골짜기를 넘어 간다. 새벽 종소리는 지체 없이 철감선사의 부도를 한 바퀴 돌아 차 잎 사이를 지나 해를 맞으러 달려갔다. 그 종소리를 듣고 나무 풀, 그 사이, 나는 새와 기는 짐승들이 깨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     © 전남방송

최고의 예술성으로 천년을 이어오는 철감선사 부도

 

쌍봉사하면 떠오르는 것이 국보로 남아 있는 철감선사 탑이다. 역사적 가치는 물론 예술성은 신비에 가깝다고 한다.

 

철감선사는 당나라의 안휘성에서 유학을 하셨다. 남천선사의 제자로 법형제인 조주선사와 아주 자연스럽게 차를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조주선사는 당나라 스님으로 “차나 한잔 하고 가게(喫茶去)”라는 화두를 남긴 분으로 차 문화에 ‘끽다거’라는 말을 남기신 분이다. 어찌 조주선사만 그러했겠는가. 철감선사의 차사랑 또한 극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무수히 많은 쌍봉사 이야기들 중 차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철감선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와 쌍봉사에서 10여 년 동안을 머무르면서 쌍봉사 인근에 차밭을 조성한다.

 

차는 불가에서 매우 귀한 음식물로 다례제를 지낼 때만 사용했으며 차를 부처님께 올리는 행위는 대단히 중요한 의식행위였다고 한다. 또한 차에 들어 있는 카페인 성분은 정신을 맑게 해서 스님들이 수양할 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차는 씨앗을 심은 지 3년 정도가 지나면 어린잎을 조금씩 수확할 수 있을 만큼 성장을 한다. 꽃피우고 씨앗을 맺어 자손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비교적 수확도 빠르고 강한 생명력을 지닌 차이지만 우리 땅에서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차를 가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다맥이 철감선사를 통해 쌍봉사에 전해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다인들에게 쌍봉사는 특별한 곳이다. 그럼에도 철감선사의 차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쌍봉사의 차를 만난 것은 10여 년 전이다. 보성지역에 자생하는 차를 만들어 먹었다. 그러던 어느 해, 산 주인이 차를 따지 못하게 했다. 그 산은 자기들이 세운 절을 소유하고 있는 종중의 산이었다.

 

차밭등이라 불리는 보성 복내의 얕은 야산에는 차가 많아서 동산이름도 차밭등이다. 그곳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고래로부터 차를 따서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산주인이 자기들 종중의 산이니 이 산에 있는 것도 자기들 것이니 손대지 말라는데 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곳의 야생차밭을 찾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도 차밭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씨앗을 구하기 위해 나주 죽림사, 문성암 등, 좋은 차가 자생하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가까운 쌍봉사 주변에 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기억 속에 아련하던 쌍봉사. 50여 년 전 소풍 왔을 때의 기억, 특별하게 남은 것은 없지만 차 씨앗을 따러 다니며 화순에 하나밖에 없는 국보인 철감선사 탑을 만나게 되었다. 철감선사가 어떤 분이었는지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된 쌍봉사 인근에서 불리었다는 차에 대한 민요를 찾게 되었다.

  

님아 님아 우리 님아

논갈이는 못 하거던

차약이나 따러가는

내일 아침 애비 생일

동산 위에 해 뜨기 전

쌍봉사절 부처님께

차약 올려 수명 길게

빌어주소 어머니요.

 

위의 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차는 약으로 쓰였다. 정신을 맑게 하고 체기를 달래며 부처님께 올려 축원을 하던 차, 쌍봉사 인근에서 찻잎을 따서 생일이면 부처님께 올리고 수명장수를 기원하던 노래로 보인다. 어디 생일에만 빌었을까?

 

우리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있는 낱말들. 명절이면 우리는 ‘차례(茶禮)’를 모시게 된다. 각종 음식을 정성들여 차려놓고 조상께 맑은 술을 드리는 절차를 말하는데 본래 차례의 의미는 차를 올리는 예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차례를 모실 때 맑은 술을 올린다. 왜일까? 차가 귀했던 옛날에는 일반인들이 차를 구할 수 없었다. ‘꿩 대신 닭’처럼 차 대신 술을 올리게 된 것이다. 차는 그만큼 접하기 쉽지 않은 귀한 것이었다.

 

▲     ©전남방송

                                       대를 이어주는 차 꽃

 

차와 관련된 또 하나의 전통적인 것이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찻독’이 있다.

 

찻독은 차 씨를 담던 그릇이다. 결혼을 하고 신부가 시댁에 처음 들어가서 친정에서 밥그릇에 담아 온 쌀을 찻독에 붓는다. 이로써 한 가족이 됨을 의미하며 대를 이어 가겠다는 맹세를 하는 상징물이었다. 그런데 왜 쌀독이 아니고 찻독이었을까? 차 씨를 담아가야 하는데 차 씨는 매우 귀했다. 그래서 차 씨 대신 쌀을 담아가서 찻독에 붓게 했던 것이다. 여기에도 큰 의미가 숨어 있다.

 

차는 작년에 맺은 열매와 올해의 꽃이 만나는 독특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즉 대를 이어 나간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신부는 시댁의 찻독에 차 씨를 넣음으로써 이 가문의 대를 이어 갈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차가 우리 생활 깊숙하게 스며있는가 하면,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품목 중 차가 먼저라고 한다. 육법공양이라 해서 부처님께 올리는 여섯 가지 품목이 있다. 차, 쌀, 향, 등(초), 꽃, 과일이 있는데 이 중에서 첫 번째로 꼽는 것이 차라고 한다.

 

수행을 해야 하는 스님들에게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정신이 맑지 않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차를 마시며 정신을 맑게 하여 수행을 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동안 쌍봉사를 다녀가신 스님들이 몇 분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철감선사가 문성왕 9년(847)에 돌아와 풍악산에 머물다가 화순지역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절을 지은 후로 창건 소실, 중건 소실을 거듭하였다. 바람에 구름 가듯 가는 그 시간 동안, 땅 넓이는 변하지 않았는데 조정의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조선이 되면서 숭유억불정책으로 수난을 겪는 동안 많은 사화가 일어나고 이 땅에는 전쟁이 휩쓸고, 국권을 잃었던 때가 있었다. 칡넝쿨이 쌍봉사 대웅전을 뒤 덮는 세월이 지났다.

 

▲     © 전남방송

칡넝쿨이 세 번을 덮었지만 모습을 찾아 이어오는 쌍봉사

 

이조말엽 쌍봉사에 머물던 천봉스님은 말씀하셨단다. 대웅전이 세 번 칡넝쿨로 덮인 뒤라야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 그 뒤로 천봉스님의 예언처럼 일제강점기 때 칡넝쿨에 덮인 대웅전을 노루의 도움으로 복원하게 되고 육이오동란 때까지 세 번을 대웅전이 칡넝쿨이 덮었다고 하니 앞으로는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화재로 인한 상처까지 있는 곳이니 이제는 목탁소리 끊이지 않고, 종소리 영원히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철감선사가 이 땅에 다녀가신 뒤로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쌍봉사 주변에는 여전히 칡넝쿨이 언제라도 뒤덮을 기세로 자라고 차나무가 군무를 펼치듯 서 있다. 탑 주위, 위 아래로 있는 차나무의 씩씩함과 차 꽃이 맑다. 아마 해 맞으러 갔던 종소리가 모셔온 해의 기운으로 차 꽃이 피어났는가 보다. 새해맞이를 쌍봉사에서 하며 홀로 읊조려 본다.

 

쌍봉사에 봄이 오면

                                 양인숙

앞 산 뒷산 녹차피어

햇살 맑은 이른 아침

노란빛의 잎을 따서

신선한 마음으로

정성으로 덖은 차를

사자 혀 밑 맑은 물로

돌솥에 팔팔 끓여

하얀 다기 우려내면

이내마음 비교할까

부처님 전 올리옵고

조주선사 철감선사

두 분께 올립니다

천년 세월 변치 않은

그 마음을 그리면서

차 씨 심어 가꾼 그 뜻

고이고이 간직하여

지나간 천년세월

다가올 천년 세월

디딤돌인 이 시간에

여기 있는 이 중생들

쌓인 업을 녹여내고

맑은 차로 남게 하소

 

덩!

 

종소리가 밀어 올린 2017년 정유년 해가 밝았다. 철감선사는 화순 땅에 차를 심어 불교의 꽃으로 천년 세월을 이어 오게 하셨다. 철감선사와 함께 차를 마시며 공부하셨다는 조주종심선사는 120세를 사셨다고 한다. 조주선사의 ‘닭 우는 축시’를 보며 지금의 나를 돌아 볼 일이다.

 

지금까지의 천년, 앞으로의 천년 속에 나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맑은 차 한 잔으로 남을 수 있을까?

 

닭 우는 축시,

                             조주선사

깨어나서 추레한 모습을 근심스레 바라본다.

두를 옷, 소매 옷 하나 없고

가사는 겨우 모양만 남았네.

속옷은 허리가 없고 바지도 주둥아리가 없구나.

머리에는 푸른 재가 서너 말

도 닦아서 중생 구제하는 이 되렸더니

누가 알았으랴! 변변찮은 이 꼴로 변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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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3 [09:18]  최종편집: ⓒ 전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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