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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한희원이 들려주는 ‘그림과 시’의 여행 5
화가 한희원이 들려주는 ‘그림과 시’의 여행 5
 
화가 한희원   기사입력  2016/11/16 [10:56]

                    맨 처음 그대 ‘청춘’


             

 

            참혹하리만큼 쓸쓸한 날의 유희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가을 아침의 통증
            잠든 영혼을 가르는 횟빛 칼날
            아, 눈부신 생이여
            눈부신 생이여

 

▲     ©전남방송

                                                                                 자화상 1993년 Oil on canvas
                                                               


누구나 청춘의 시절은 있었으리라. 청춘이라는 시간 없이 어찌 나이가 들었으며, 청춘의 겁겁한 나날 없이 생의 아름다움과 추억을 어찌 이야기 하겠는가. 청춘이라는 가슴 뛰는 단어에 사랑과 절망의 사연들이 절절히 박혀 있다. 청춘을 만나지 못하고 불꽃처럼 사그라져버린 생명들을 간혹 볼 때면 그 사연 속에 들어 있는 아픔이 애간장을 녹인다.


 지금은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져 버린 나의 청춘은 어디쯤에서 서성이는지....... 미치도록 샌드백을 두드리며 운동에 심취했던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불현 듯 찾아 왔던 ‘시’도 뒤로 하고 내 생애 처음으로 찾아갔던 낡은 미술학원. 미술학원을 향해 오르며 느꼈던 먼지 묻은 5층 계단의 서늘함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입을 실패하고 방황하던 내게 “세상에는 그림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번 해 볼래?” 라며 툭 던지듯 말했던 누나의 한마디....... 내 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던 한마디였다.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었다. 어린 시절 외에는 그림을 접해본 기억이 없는데 누나는 무엇 때문에 나에게 그림을 권했을까?

 

▲     ©전남방송

                                                                           초우 2009 Oil on canvas 78x39


대학을 가기 위해 삼수라는 올가미를 선택한 후 생전 처음으로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 충장로 신동아 극장 맞은편에 있는 용아 빌딩의 옥상에 가건물로 지은 ‘백제 미술학원’을 찾아갔다. 어둡고 오래된 먼지가 묻은 5층 계단이 왜 그리 멀고 아득하던지. 눅눅한 체취가 은밀하게 스며들어 왔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렸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들어간 미술학원은 오래 된 영화의 스틸장면처럼 하얀 석고들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석고 대에 즐비하게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고의 어깨와 머리 위에는 사람들이 만진 손자국과 잿빛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그리파, 줄리앙, 아리아스.......

 

▲     ©전남방송

                                                                                 호롱불 2004 Oil on canvas


                   화실

 

                   며칠간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무엇에 쫓기고 있는 건지

 

                    고흐의 자화상을 본다
                    나를 보고 있는 눈빛이
                    영혼을 뽑아 가는 것 같다
                    무섭다
                    영혼을 그려야 하는데
                    내 인물에 이런 혼이 있는지
                    이런 비수가 있는가

 

                    먼데서
                    고흐의 총소리가 들린다

                    땅!

 

 그렇게 처음 그림을 만나게 되었다. 늦게 시작한 그림인지라 미술학원을 다니던 1년간은 오로지 그림에만 매달렸다. 이것이 아니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금이 없어지도록 목탄으로 그리고 문질렀다. 지금은 연필로 데생을 하지만 그 시절에는 목탄으로 데생을 하였다. 몇 달 후 화실생활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어색함은 익숙함으로 적응해가니 그림에도 깊이 빠져들 수 있게 되었다. 오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나중에는 새벽까지 그림에 매달렸다. 백제 화실은 지금은 고인이 된 오승윤 화백이 운영했는데 내가 들어갈 때는 전남대학교 미술교육과가 처음 창설되어 교수로 가시고 화가 조진호 형이 맡아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는 화우들을 만나 지금까지 평생지기로 지내고 있다. 학원을 다닌 1년 후에 다행히 조선대학교 미술교육과에 들어갔고 나의 대학시절이 시작되었다.

 

▲     ©전남방송

                                                   바람찬 날 들녘에 서면 1992 수채+과슈,목탄 77x112
                                           

70년대 중후반이었던 대학시절은 얼마 못가 암울하고 참혹한 군사독재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유신말기의 숨 막히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었다. 방황하는 젊음 속에는 묘하게 흐르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퇴폐스러움이 묻어나고 통기타와 장발이 유행하고 있었다. ‘겨울 여자’, ‘별들의 고향’이 극장가에 나부끼고 거리에서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가 들려왔다. 우리들은 그림에 취해 있었고 순수예술지상주의에 빠져 있었다. 밤새도록 막걸리에 취해 ‘고래사냥’을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누구나 기타를 치며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배웠다.
그 시절 ‘이중섭 평전’이 출간되어 가난하고 우수에 젖은 절망적인 화가를 꿈꾸었다. 가난이 두렵지 않았고 그림에 모든 걸 걸고 싶은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예술가들이 겪은 죽음과 같은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도 모르던 환상과 순수한 열정의 시기였다. 수많은 현실을 겪으며 변화된 지금도 가슴 한 구석에는 순수한 시절에 꾸었던 그때의 꿈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것은 예술가들만이 간직할 수 있는 꿈일 것이다.

 

▲     ©전남방송

                                                                   큰 참나무 2001 Oil on canvas


                                     
나이가 들어서 대학에 입학했다고 생각하였는데 예상외로 동갑내기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때는 나이순대로 번호를 매겼는데 24번이 나였고, 25번이 지금은 목사가 된 신은학, 26번은 화가 김산하 였다. 우리는 삼총사처럼 매일 붙어 다녔다. 그 친구들과 함께 한 대학생활은 짧았지만 깊은 우정을 남겼다. 짧았다는 이유는 얼마 후 모두들 군대에 가버렸기 때문이다. 입학동기 중 나보다 6살이나 위인 진경우 형과 나만 남고 모두들 군대에 갔다. 이후 나는 한참 선배들인 형들과 어울려 다녔다.
자칫 외로웠을 대학생활을 시를 썼던 나린 형, 노래하는 용하 형, 그림 그리면서 철학자였던 근표 형,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던 경우 형과 함께 보냈다. 나는 말수가 적었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나 형들은 나를 친구처럼 데리고 다녔다.
린이 형은 술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술에 취하면 시를 썼다. 나중에 형은 ‘바람과 나무와 새’라는 단 한권의 시집을 냈고 표지는 진경우 형이 그렸다. 양동 닭장머리집 이층 적산가옥에서 살았던 근표 형의 집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밤에 근표 형 집에 모여 밤새도록 철학과 미학을 이야기 했다. 벽에 걸렸던 근표 형의 자화상은 지금도 그 어떤 화가의 작품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수강료도 없이 나는 형들의 대화에 취하며 성장하였다. 그렇게 대학시절을 보냈다.

 

                    낯설고 쓸쓸한 저녁

 

                      눈을 뜨니 낯설고 쓸쓸한 저녁이었다
                      낡은 어둠 아래로 막 깨어난 별 빛이
                      소록소록 거리에 쌓이고 있었다
                      어제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기억할 수 없는 몇 마디 말들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어두운 형광등 불빛 아래 방안은 점점 퇴색하고
                      벽지의 꽃잎은 오랫동안 안개가 되어 있었다
                      찬 벽에 기대면 영혼까지 침범하는 깊은 우울함
                      조각난 파편들이 널려 있는 기억 저편의 허무
                      검은색으로 그린 풍경화 한 장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참으로 어둡고 맑은 빛이었다
                      그것은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눈물이었다
                      오래된 앨범에 끼워 둔 유년시절의 먼지 묻은
                      기억을 꺼내본다
                      퇴색한 사진 한 장, 기침소리, 소리, 소리
                      기다림에 지친 그림자 하나 낯선 저녁에 걸려있다
                      깊은 상처가 남겨진 쓸쓸한 저녁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구 시청 사거리에 ‘파라솔’이라는 야외 카페가 있었다. 지금도 구 시청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지만 70년대에도 구 시청에서 젊은이들이 막걸리에 취하고 노래를 불렀다. 천정도 없는 ‘파라솔’ 마당에는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포도나무 아래에 모여 술을 마시며 생을 이야기 했다.

 

                    생이라는 것

 

                      모든 그리움을 버리고
                      유목의 강을 건너는
                      적멸의 시간

 

                      가슴에 달이 뜨는 것을
                      가슴에 달이 지는 것을
                      달이 진 후 
                      이리도 아픈 가슴 속에
                      꽃이 피는 것은

 

                      단 한 번의 미소
                      단 한 번의 눈물

 

                     생이라는 짧은 단어의 무게

 

그 시절 전남대와 조선대의 미술과에서 몇몇이 모여 ‘사다리’라는 서클을 만들었다. ‘사다리’는 독서모임의 성격을 띠었는데 미술사에 관한 책을 선정하여 읽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사다리 구성원들의 열정이 대단하여 가히 영혼의 감옥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옭아매고 공부하였다. 한번 토론이 시작되면 밤새도록 열띤 토론을 했었다. 나중에는 독서모임으로만 끝나지 않고 1년을 결산하는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비록 대학생들의 전시회였지만 우리 전시회가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꽤 컸었다. 전시회 기간 중에 오지호, 배동신 선생님을 모셔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4학년 시절인 1978년은 유신독재가 막바지를 치닫고 있어 자유가 박탈되었다. 수많은 의식 있는 인사들이 투옥되는 등 공포에 시달렸다. 내가 다니던 기장 양림 교회는 진보적인 민주화 인사들이 많아 형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교회 청년회에서 활동하던 나로서는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아름다운 인물과 꽃만을 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교회 지하실에서 초등학생부터 청년들까지 저녁이 되면 공동체 같은 생활을 하였는데 나는 그곳에서 대학시절 마지막 대작인 ‘가난한 사람들’을 그려서 ‘사다리 전’에 출품하였다. 그 작품은 5m나 되는 대작이었다. 어두운 암청색 바탕위에 서있는 사람들과 우두커니 앞을 응시하고 앉아있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었는데 그 시대의 아픈 민초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나중에 이 그림은 양림 교회 교육관에 오랫동안 걸려있었다. 그런데 그림이 너무 어둡다고 하여 내가 소장하고 있었는데 구 MBC사옥에 작업실이  있던 시절에 현관에 있던 이 작품을 누군가가 칼로 손상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     ©전남방송

                                                        가난한 사람들 1978 Oil on canvas 190x500cm
                                               

가을이 되면 교정의 플라타너스 잎이 바람에 떨어져 뒹구는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가을 잎 찬바람에’를 읊조리며 걷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캔버스가 찢기는 상처처럼 아픈 청춘의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나무들의 시가 거리를 떠돈다

 

               나물들의 시가
               거리를 떠돈다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질 때
               저녁 무렵 골목길 끝
               홀로 사는 누이 창문에
               흔들리는 등불의 눈물로
               시는 노래한다
               가난한 사람들 가슴에
               하나 둘씩 슬픔처럼 등불이 켜진다
               거리는 나무들의 시로 가득하다
               떠도는 영혼들의 숨소리 들려온다
               인생은 하나씩 등불을 켜고
               걷는 여행길인데
               그대의 등불은 타오르고 있는지
               나무들의 시가 거리를 떠돈다
               나무들의 시가 거리에서 노래한다

 

▲     ©전남방송

                                                           강으로 가는 길 2005 Oil on canvas  77.5x41

 

                                             

세월이 흐른 후에도 청춘의 시절은 가슴 깊이 박힌 전설처럼 남아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젊은 시절에 느끼고 채워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하나씩 덧칠하고 치장해서 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가고 또 세월은 흘러갈 것이다. 어느 순간 먼지가 되어 사라질지언정 우리들이 꾸었던 청춘의 꿈은 영원히 남아 세상을 떠돌 것이다.


              빈 사랑

 

              성에 낀
              창에
              너의 이름을 적어본다

 

              그
              끝에
              눈물이 맺혀
              떨어진다

 

               겨울, 긴
               창가에
               눈이 내린다

 

               눈이
               다
               내린 후
               나의 빈 사랑은
               멀어진다

 

              그러면
              그대여
              안녕
              안녕......

 

▲     ©전남방송

                                            떠나는 사람들의 마을 첫사랑 1998 Oil on canvas 66x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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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16 [10:56]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masanduk@hanmail.net 16/11/19 [06:05] 수정 삭제  
  그림을통하여 시대의아픔이 잘표출된그림입니다.
미니 16/11/19 [08:24]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문장이 깔끔하고 참 좋습니다. 시와 그림도 마음 시리도록 아름답습니다.
장선욱 16/11/19 [08:52] 수정 삭제  
  도대체 못하는 게 뭡니까? 그림민 잘 그리셔도 될 분이 글까지 잘 쓰시는 건 불공평한 일입니다.
무노 16/11/21 [08:52] 수정 삭제  
  그시절은 보내진 못했지만 그안에 있었던 듯 하네요. 감사합니다
speer 16/11/25 [20:13] 수정 삭제  
  선생님 글을 읽고 또 읽습니다. 선생님의 작품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더욱 잘 들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광주에 양림동에 저희들과 가까이 계셔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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