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상단) 오현주 시인.(하단) 월간모던포엠 12월호-통권231
건반에서 건반으로
울려주기를 원하는 팽팽한 줄이라고 했다
두드리면 깨어나는 문 너머를 몽상이라 말한다면
조율한 문과 줄 사이에서 달콤한 단조가 태어났다
몸을 가꾸어 음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동안
팔 하나 빼고 발 하나 빼면서 알았다
악보에 없는 아니, 있는
빈자리를 채운 수많은 암시
이 기쁨과 슬픔의 복화술
계절과 계절을 건너는 영혼을 환절이라고 했다
변주하는 악장에서
여백이 된 그 많은 알몸을 말한다면
줄 당기는 너는 안으로 안으로 있었으나
계단과 계단 틈으로 겹겹이 울었다
가을이 겨울로 옮겨갈 시기라고 했다
울음은 색채를 덜어내고 선명한 입체가 되었다
후미진 사각지대에 알 낳는 여자를 보았다
검은 무릎 사이, 흰 새처럼 외발로 서 있었으나
부화한 자식들은 하나같이 음표와 섞여들었다
기막히게 기쁘게 슬프게 울려줄게, 여자! 너의 속살을 만진 뒤 함부로 지나치지 않을게
오르거나 내려오는, 그
경계에서 관계에서
벌써
무채색의 외도, 젊은 남자가 얼룩을 내지르고 있다
흰 꽃잎 검버섯 피어오르듯이
(그가 편의점 계단의 햇살에 눌려 잠든 낮을 보았다)
생기로운 스펙트럼 어쩌지 못해
앙다문 그늘 끌어안고
지저분하게 시든 목련 같은 남자
너무 아픈 사람은 잠 속에서만 살아야 하듯이
두드려 깨울 수 없는 잠이 깊다
빛 반대쪽으로 갈 데까지 가 본 남자
술병으로 뼈대 끼우고 일어선 봄밤이라서
후드득 엉망을 튕겨내고 있어서
반듯이 반드시 고쳐 말할 수 없어서
이 시절을 받아적는다
(이제 나와 당신은 희고 깨끗해질 수 없다)
지나간 생애를 지울 수 없듯이
순백으로부터 옮은 허언이듯이
낙락한 봄밤을 촉진하는 잎사귀가 올 것이다
나뭇가지는 해진 그림자를 탈의할 것이다
서둘러 목련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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