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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시 』 박지웅 시인. 네번째 시집 '나비가면'
이 삶이 보이지 않는 것에 시달리기는 해도 행복하게 견디고 있다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2/11/26 [10:52]
▲     © 전남방송

▲ 사진/ 박지웅 시인

 

나비가면: 시인의 말

 

저 세상과 섞여 있는 이 세상의 해안선으로

밀려오는 가면들

그 중에 하나를 쓰고 살아간다

 

이 삶이 보이지 않는 것에 시달리기는 해도

행복하게 견디고 있다

 

그쪽만이 아니겠으나

남쪽에서 혹은 나비 쪽에서

밀려온 구절들을

제 살던 하늘땅으로 돌려줄 때가 되었다

 

내려놓으면 날아갈 것이다  

 

                 2021년8월 박지웅

 

 

 

꽃무늬 흉터

 

 

서랍 안쪽에는 세상이 모르는 마을이 있다

속으로 밀어넣은 독백들이 저희끼리 모여 사는 오지

 

먼 쪽으로 가라앉은 적막에 새들도 얼씬하지 않는

바람마저 알아차리지 못한

그 외진 길에 편지 하나쯤 흘러들었을 것이다

 

서랍에 손을 넣으면

독백은 내 손을 잡고 아랫마을로 내려간다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종종 과일이 사라지는 것은 마을에서 손이 올라온 것

 

내가 먹는 그리움에는

왜 뼈가 나올까

 

누군가 파먹은 사람의 안쪽

가만히 문지르면 흉터는 열린다, 서랍처럼

 

가끔 그곳에서 곡소리가 난다

고백 하나가 숨을 거든 것이다

 

부치지 못한 편지 밖으로 발을 내민 그리움

뼈만 남은 글자들이 꽃상여에 실려 거처를 떠난다,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흉터는 눈뜨고 죽은 글자들

모든 꽃은 죽어서 눈뜬 글자들이다

 

 

 

실어 (失語)

 

 

혓바닥은 말들이 이륙하는 활주로였으나

나는 오래전 나를 폐쇄하였다

 

마른 입술로 접은 편지도

발 묶인 그리움도 쓸쓸히 먼 일이 되었다

 

날마다 당신을 선회하다 돌아오던 말

받을 수 없어 나는 집을 비웠다

 

다시는 내릴 곳을 찾지 마라

나의 상공으로 회항하는 한숨들아

 

한때 나의 귀는

당신 목소리가 밤낮으로 착륙하는 아름다운 공항이었으나

 

당신이 폭설에 갇혀 자주 하늘을 볼 때

그날 말했어야 했다,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당신이 사랑하는 일은 물 위에 새를 쓰는 일과 같았다

새는 태어나자마자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프로필

 

부산 출생

2004 『시와 사상 』신인상

2005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

산문집 『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 』

지리산 문학상

천상병 시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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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1/26 [10:52]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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